<포럼> `밑빠진 독` 해외 한국학 지원

그 동안 한국 정부는 미국과 유럽의 대학들에 한국학 개설과 발전을 위해 100만달러를 단위로 지원했다. 석좌교수직을 만들어 지원하기도 했고, 정부와 별도로 대기업도 100만달러 단위로 외국 대학에 투자했다. 창업주의 이름을 따서 외국 연구소에 지원 하기도 했다. 아무 조건 없이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 상당한 돈을 투자한 것이다. 지금쯤 그 돈이 종잣돈이 되어 새싹을 틔우고 한국학을 발전시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언제까지 한정 없이 외국 대학의 한국학을 지원할 것인가? 한국학이 언제쯤 자력으로 살아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 없이 외국의 한국학을 계속 지원해서는 곤란하다. 일본학은 일본의 정부· 기업 돈으로, 중국학은 중국의 정부·기업 돈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일본이 미국과 유럽의 대학에 일본학 발전을 위해 돈을 줄 때에는 반드시 같은 액수의 자금을 외국 대학이 조성하도록 했다.

예를 들면 100만달러를 주면 반드시 100만달러를 그 대학이 만들어서 200만달러의 기금을 조성, 그 성과를 보이도록 했다. 반면, 한국은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주었고, 그 돈이 바닥나면 그만 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한국학의 문을 닫게 됐다면서 계속 한국 돈이 와야 한국학을 유지하겠다며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은 지금까지 얼마만한 돈을 받아서, 어떻게 한국학을 개설하고 성장시켰는가? 그 결과를 먼저 한국에 알리고 나서 지원 요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것과 연관지어 한국학이 옥스퍼드에서 사라지면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될 것이란 주장은 옳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옥스퍼드대학에 한국학이 있음에도 독도 아닌 다케시마로 이미 표기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학은 일본학보다 우위를 가질 수 없고, 중국학보다 우위를 가질 수 없다. 국력이 일본·중국보다 약하고 학문의 역사도 짧 다. 그들의 우위는 앞으로 20, 30년간 계속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기업이 몇 천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해서 다케시마가 독도로 표기되고, 일본해가 동해로 표기될 것 같지 않다.

영국의 지성인과 양심가들이 왜 ‘독도’라고 표기해야 하는지를 ‘이코노미스트’에 알릴 때 한국학의 싹은 튼다. 한국이 투자 한 종잣돈은 은행에 맡겨 두고, 그 이잣돈이 한국학 발전에 쓰인다면 그 종잣돈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결국 그런 조건이 없었기 때문에 또다시 “돈 없어요. 돈 주세요”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 의회도서관에 100만달러를 준 적이 있다. 그 돈의 행방을 물었더니 의회도서관의 직원은 한 푼 없이 다 달아났다고 말했다. 한국 돈은 눈먼 돈이요, 참으로 편한 돈이었다.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그 큰돈이 남기고 간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한국인들의 혈세가 외국에서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한국학 발전기금으로 100만달러를 받은 미국의 한 대학총장과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다리가 무너지는 나라로부터 100만달러를 얻어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외국의 대학들은 한국의 대통령들에게 명예박사를 주고 100만달러씩 받았던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스스로 한국학을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와 기업은 지금까지의 성과와 앞으로 자력으로 살아날 한국학을 평가하여 지원해야 한다.

미국 속의 한국학은 미국 속의 한인 2세, 3세가 자라면서 한국 정부·기업의 돈 없이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돈을 얻어서 한국학을 존속시키겠다는 외국 대학의 지성들에게 눈먼 돈 받아 쓸 생각 말고 성과·결과 중심의 청사진을 먼저 밝 히라고 요구해야 한다.

<최연홍 / 서울시립대 행정학 교수>

(문화일보 2005-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