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행동하라, 행동! 안 하면 매국이다"

4월 9일 토요일, 정오가 조금 넘은 무렵.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열띤 '반일토론'이 벌어졌다. 친구의 결혼축하를 위해 모였던 중국 사회과학원의 젊은 연구자들 입에서는 거침없는 말들이 튀어나오며 한바탕 신나게 일본을 '씹어댔다'.

"요즘 일본 애들이 완전히 미친것 같아!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그런 도발들을 할 수가 있냐. 난 요즘 들어 아주 부쩍 더 일본을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변함없이 뻔뻔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아무래도 일본이 이렇게 막나가는 것은 지금까지 중국의 대일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야. 장쩌민 주석 때만 봐도 대일 정책이 얼마나 유했는지 다들 알고 있잖아. 만날 그 '경제 제일'만 내세우며 웬만하면 얼굴 안 붉히고 넘어가려다가 지금에 와서 일본한테 뒤통수를 맞은 거라고! 한마디로 일본은 중국이 돈벌기에만 혈안이 돼 있어서 정치적인 문제에는 적당히 타협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맞아! 새 정부는 이제부터 일본에 강경해질 필요가 있어. 인민들이 일본에 대해 아무리 강경하게 나와도 정부차원에서 지지를 안 해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한참 얘기들이 무르익어 갈 무렵, 그중 한명이 일어나더니 '잠시 조용히 좀 하라'며 주변을 정리시킨다.

"그런 얘기는 백날 해봐야 소용없고 중요한 건 행동이라고, 행동!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운동에 참가 안 한 사람 있어? 아직도 안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매국이야 매국!"

"그렇게 말하는 너는 대체 몇 군데나 서명했냐? 난 거의 모든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반대서명은 다 했어. 게다가 내 이름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이름으로까지 전부 다 서명했다고. 너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지?"

그때다. 갑자기 주변에서 휴대전화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중 몇 명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모두 다 문자메시지였다.

"지금 베이징(北京) 시내에서 반일 가두시위가 벌어지고 있대!"

핸드폰 문자메시지 내용은 모두가 다 그날 베이징 시내에서 벌어졌던 반일시위와 관련된 것이었다. 문자메시지에는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지금 시위대들이 베이징 시내 둥즈먼(東直門)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는 중이며 다음 장소인 시즈먼(西直門)으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화제는 다시 중일관계에서 반일시위로 옮겨갔고, 술을 한잔 걸친 대학원생이 일어나더니 갑자기 주먹을 쥐며 '반일구호'를 외친다.

"일본상품 사지말자! 소(小)일본을 타도하자!"

식사자리가 끝나갈 무렵, 그중 몇 명의 젊은 대학원생들은 택시를 타고 '반일시위'를 하러 떠났다.

중국전역, 주말 대규모 반일시위 전개

지난 9, 10일 베이징, 광저우(廣州), 센젠(深천(土+川)) 등 중국 주요 대도시에서는 주말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졌다. 베이징에서만 참가인원이 1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됐다. 9일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베이징 중관촌 전자상가 중심지인 하이롱 빌딩 앞에 모인 이들 시위대들은 "오늘 당신이 일본상품을 사게 되면 그것은 곧 내일 중국에 투하될 미사일에 돈을 보태는 것과 같다"라고 적힌 피켓 등을 들고 중국 국가를 부르며 반일시위를 시작했다.

이날 시위는 중국 민간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수호 연합회와, 중국 애국자동맹 등의 단체가 주축이 되었으며 주로 인터넷 등을 통해 시위계획을 사전에 알렸다. 싱가폴 최대 화교신문인 <연합조보>가 댜오위다오 수호연합회 관계자 인터뷰를 인용한 것에 따르면 이날 시위는 주로 대학생 단체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관방의 '특별비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규모 반일시위 이후 일본정부는 시위의 배후에 중국정부가 있다며 중국정부 책임론을 언급, 중국 측에 재발 방지 및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12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외교부 대변인 친 강은 "이번 시위는 최근 일본의 역사 문제 등에 관한 잘못된 태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시위로, 현재 중일관계에 이러한 국면이 조성된 근원은 일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일본은 (이번 중국 반일시위를 통해)마땅히 반성해야 한다"는 말로 일본의 외교적 항의를 맞받아쳤다.

같은 날, 인도를 방문중인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도 중국 내 반일시위와 관련해 "일본당국의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인들의 반일여론이 악화됨에 따라 중일 양국간 외교적 설전도 갈수록 날이 서고 있다.

시위는 '예스', 보도는 '노'

그러나 9, 10일 주말 반일 시위사태 이후 중국 관영매체를 비롯해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은 이번 시위에 대해 일제히 함구했다. 반일 가두시위가 당국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점과는 대조적으로, 반일관련 언론보도는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지난 3월말 이후 언론매체에 반일관련 기사를 싣지 못하도록 보도통제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언론까지 '반일정서'에 가담하면 자칫 중국 내 반일여론이 통제 불가능 한 수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듯하다.

지난 9일 베이징 시위를 취재했던 중국 관방매체의 한 기자는 "취재 후 상부에서는 절대로 기사화 하지 말라고 했다"며 "반일관련 문제는 되도록 조용하고 냉정하게 처리하라는 중앙선전부의 지침이 있었던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주말 반일 시위 양상이 당국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자발적이고 '과격'했었다는 점을 의식해서인지 12일과 13일, 중국 관영매체 신화사의 인터넷 판 <신화왕>에서는 연달아 시민들의 이성적 자제를 촉구하는 글들을 내보내 눈길을 끌었다. 이 글들은 모두 홍콩 신문에 실렸던 것인데 신화사에서 재 게재한 것이다.

내용은 대부분 "반대해야 할 대상은 일본기업이나 상품, 일본자본, 일본기술 등이 아니라 일본우익세력과 그 정책"이라고 전제한 뒤 "중국인들은 마땅히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중일관계를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일관계는 아직도 경제적 이익관계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과 같은 방식은 현명한 '반일'이 아니라는 논지다. 때문에 '반일도 이성적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상품 불매운동 유행

반일시위와 함께 현재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최대 반일 운동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이다. 일본 새역사교과서모임에 후원하고 있는 기업으로 알려진 아사히 맥주 등에 대한 불매운동이 3월 말부터 중국 동북지방의 장춘 등을 중심으로 시작되면서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돼 갔다. 지난 9일 베이징 시위에서도 '일본상품 배격하자'라는 구호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9일 베이징 시위 다음날 점심시간, 칭화대학교(淸華大學敎) 각 학생식당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 중화를 사랑하고 일본상품을 배격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본 상품 불매운동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칭화대 학생들은 사지 말아야 할 일본상품 명단이 적힌 전단지를 나눠주었는데, 여기에는 일본상품 배격운동과 관련된 구체적인 행동구호와 목표 등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중국연쇄점경영협회는 4월 6일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상품배격운동 제안서'를 내놓았다. 이 제안서는 "중국민족기업으로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며 마땅히 자신의 행동으로서 일본상품배격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라며 일본의 새역사교과서모임에 후원하고 있는 일본기업들의 상품을 진열대에서 철수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중국소비자들에게도 중국인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서는 당연히 이러한 불매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허난 정저우시에서도 핸드폰 시장과 약국, 식당가 등을 중심으로 일본상품들이 철거되었으며, 각 도시마다 '일본상품 배격하자'라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상품배격'이라는 문구를 쓰고 질주하는 차량들도 간간히 눈에 띄고 있다. 이러한 일본상품 불매운동은 5·4 운동 기념일이 있는 5월 들어 최고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말, 다시 대규모 반일시위 계획

지난 주말 이후 중국 전역은 겉으로 보기에는 반일시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그 불씨가 소진된 것은 아니다. 이번 주말에도 전국 각지에서 또 한번 대규모 반일시위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상하이시에서도 반일시위를 계획하고 있어서 현지 일본기업들과 주재원들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더군다나 최근 일본이 동중국해 천연가스전 시굴권을 민간업자에게 부여하기로 결정하자, 중국 내 반일여론은 한층 더 악화되고 있다.

현재 중국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서는 16~17일 전국 각지의 주말시위 관련된 계획들이 상세하게 공지되고 있으며 시위 참가자들의 행동수칙과 구호까지 제시되고 있다. 지난 주말시위가 일본대사관에 투석을 하는 등 다소 폭력성이 있었다는 점을 의식해서인지 이번에는 대부분 '비폭력'을 행동수칙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절대로 일본 우익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는 비이성적, 폭력적 행동은 삼가자고 호소한다.

중국 내 반일시위는 당국의 불허나 통제방침이 없는 한 다음달 5월까지 계속 절정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5월 4일 오전 9시 베이징 시단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일시위가 이미 예고되어 있는 데다, 전국적으로 반일시위가 주말마다 열릴 것으로 예상돼 이를 둘러싼 중국정부의 고민이 그만큼 깊어지게 됐다. 현재 중국 인터넷에서는 네티즌들의 성난 목소리들이 봇물을 이루는데다가, 대일문제에 대해 정부가 적절한 처리를 하지 못하면 그 분노의 화살이 중국내부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글들도 올라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언론통제를 통해 반일여론 악화를 우려하고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을 향한 중국인들의 민족주의적 분노의 출구를 열어주며 일본을 압박하고 있는 중국정부로서는 이래저래 버거운 외교적,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박현숙 기자 : 현재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중국정치를 공부하고 있다. 주로 중국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며 앞으로 틈나는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오마이뉴스 2005-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