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이젠 좀 진정하자

“한국 사회는 정부와 여당이 중심이 돼 북한의 위협에 대한 정신적 무장해제가 한층 진행되고 있다. 교육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도 보수파와 진보파의 공방이 치열하다. 부시를 혐오하는 자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라면 부시를 택하겠다.”

한국 일각에서 자주 나왔던 것 같기도 한 이 주장은 실은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기관지 ‘후미(史)’에 실린 글이다. 글머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도 이게 일본에서 자기중심적 교과서를 만든 자들의 주장임을 알고 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일본은 역사왜곡 중지하라’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장기를 불태운다. 가게는 일본 상품을 숨기고 ‘V815’라는 브랜드의 디지털 카메라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의 반일 시위 현장과도 닮은 이건 요즘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일 시위 풍경을 전하는 기사다. 여기에 공감하던 사람도 얼마 전 중국과의 고구려사 소동을 떠올려보면 조금 생각이 복잡해질지 모른다. 그 때는 고구려를 한국 3국시대의 역사로 교과서에 명시하고 있는 일본 학계와 연대하자는 주장도 한국서는 묘안으로 꼽혔었다.

한ㆍ중ㆍ일 3국에 이른바 민족주의 열풍이 거센 것처럼 보인다. 민족주의라는 큰 깃발 아래에서는 좌파와 우파, 보수파와 진보파의 구분이 어려워지는 특성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상대가 하나가 아니라 3국이 얽히면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도 헷갈린다. 앞에 든 두 예화의 착시(錯視)현상도 이런 데서 연유할 것이다.

잠시 뜨거운 감정이나 거창한 관념의 세계에서 눈을 돌려 자기 주위에 아는 이들의 생활을 살펴보자. 이제는 중국이나 일본 때문에 인명이나 재산상의 손실을 입은 사람 보다는 두 나라와 관계를 맺으며 먹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는 일본인이나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한국의 학술행사에 참가했던 미국의 원로 동아시아 연구가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한ㆍ중ㆍ일의 민족주의적 현상에 대해 “그런 갈등도 경제적 상호의존에 의해 억제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우선 지도자들이 서로 레토릭(수사)부터 순화하고 줄여야 한다”고도 권했다. 길거리의 목청에 정치지도자가 편승해 문제를 악화시키지 말라는 충고로 들린다.

한국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은 동북아 평화ㆍ번영시대를 내걸어왔고 최근에는 동북아 균형자론도 꺼냈다. 그러면서 미국, 중국, 일본을 차례로 돌고 북한에 대해서까지 할 말이 됐든 쓴소리가 됐든 할 만큼 다 했다. 이제 말은 좀 줄이고 정리와 수습을 해야 할 때다.

물론 상대들의 도발이나 원인제공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었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너무 잦으면 밖에서는 좌충우돌로, 안에서는 우왕좌왕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남들 사이에서 균형자가 되려면 먼저 자기부터 중심을 잡아야 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

올해 11월에는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연말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첫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린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이런 다자간 무대와는 별도의 3국 정상회의도 제안했었다.

무엇보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은 아직 언제 재개될 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일보 / 신윤석 국제부장 대우 2005-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