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평양서 김정일 만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은 메가와티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평양에 날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속내를 터놓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다"는 구두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확인돼 주목된다.

<오마이뉴스>가 12일 확인한 바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지난 3월4일 방한중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초청해주면 평양을 방문하겠다"면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메가와티가 노 대통령의 "평양방문 용의"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보도했으나 친서형식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오마이뉴스>의 확인 요청에 '구두 메시지'이지 친서는 아니라고 밝혔다.

"김정일 위원장 초청해주면 평양에 날아가 속내 터놓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메가와티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해 주면 평양에 날아갈 수 있다"면서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속내를 터놓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다"고 상당히 전향적인 방북 메시지를 전했다.

이와 같은 노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할 의향을 처음으로 내비친 것이어서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필요하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여러 번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북한 지도층에 영향력이 있는 외국의 전 국가수반을 창구로 "평양에 날아가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다"고 구체적인 구두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의 장기적인 교착 및 악화를 계기로 그동안 '6자회담을 통한 선(先)북핵 문제 안정화, 후(後)정상회담 개최' 원칙을 고수해온 노 대통령의 입장에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권의 한 외교 소식통도 "노 대통령이 메가와티 전 대통령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친서(親書) 형태는 아니지만 노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은 4월 12일 김일성 생일 직전에 북한을 방문해 곧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다. 따라서 외교 소식통들은 메가와티 전 대통령이 방북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노 대통령의 메시지와 북핵 문제에 대한 우려 등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메가와티는 대통령 재임 기간인 지난 2002년에도 남북한을 잇따라 방문해 북핵 문제 등을 중재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는 비동맹회의의 주도국으로 북한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에 하나다.

메가와티, DJ 면담 때도 "북한 지도자들에게 메시지 전달하겠다" 밝혀

한편 메가와티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 접견하기에 앞서 지난 3월 2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핵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자리에서도, 김 전 대통령이 메가와티 전 대통령에게 대북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되어 이와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비서실의 최경환 비서관은 "메가와티 전 대통령이 '4월 평양에서 열리는 꽃축제에 참석할 예정인데 혹시 북한 지도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으면 전달해 드리겠다'고 말해 김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6자 회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메가와티 전 대통령에게 "북한은 6자회담에 참가해 북한의 주장을 밝히는 것이 좋다"며 "6자회담에 나가지 않으면 북한 입장만 어려워진다는 뜻을 북측 지도자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대해 메가와티는 "평양을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생일(4월 15일)을 전후해 해마다 열리는 김일성화(花) 전시회 참관차 4월 12일에 방북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당국은 지난 99년부터 김일성의 생일을 전후해 김일성화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올해에도 김일성의 93회 생일을 맞이해 제7차 김일성화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김일성화는 김일성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던 지난 65년 4월 당시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난(蘭)과의 열대식물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인도네시아 지도자들과 일부 단체들은 해마다 김일성화 전시회에 참석해왔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맏딸로, 1999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부통령으로 당선된 후 지난 2001년 7월 당시 와히드 대통령이 부패로 탄핵되자 대통령이 됐었다. 따라서 선대(先代)부터 이어진 친교 관계로 인해 메가와티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영향력이 있는 몇 안되는 외국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다.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 "교도통신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

한편 노 대통령의 독일 국빈방문을 수행중인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교도통신> 보도 직후 현지 브리핑에서 "(노대통령이 메가와티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남북간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외신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친서가 아닌 구두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사실이어서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오마이뉴스 / 김당 기자 2005-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