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공휴일

"4월5일은 신라의 대당승전기념일이다"
"단군의 후손이 개천절을 없애자니..."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을 조선 되게 한 것이 화랑"이라며 우리의 화랑정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화랑이 '임전무퇴'의 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싸움터에서 죽어야 천국의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화랑은 싸움터에서 물러서지 않고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랑은 하급장교였다. 김유신 장군도 화랑 출신이다. 이 하급장교가 자그마치 3,000명에 달했다. 화랑 한 명이 한 소대의 병사를 지휘한다고 해도 몇 만의 병력쯤은 간단하게 지휘할 수 있는 숫자였다.

화랑의 정신은 당나라와의 싸움에서도 예외 없이 발휘되고 있다.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신라까지 삼키려고 했다. 이를 눈치챈 신라는 당나라를 선제공격했던 것이다. 신라는 우선 당나라의 군량부터 짓밟았다. 당나라 군사들이 일궈놓은 둔전을 쑥밭으로 만든 것이다. 발끈한 당나라가 군사를 동원하자 첫 전투에서만 5,300명을 베고 장수 6명을 생포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7년 넘게 계속되었다. 마침내 당나라는 신라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신라의 대당 항쟁은 오늘날로 치면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싸움이었다. 신라는 당나라의 적수가 아니었다. 애당초 상대가 될 수 없는 국력이었다. 그런데도 신라는 승리했던 것이다. 신라는 당나라가 본때를 보이려고 파견한 장수 이근행이 이끄는 20만 대군을 맞아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크고 작은 18번의 전투를 모두 이겼다. 화랑의 힘이었다.

신라는 당연히 승전고를 울렸던 찬란한 '개선의 날'을 기념일로 삼았을 것이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승리를 자축했을 것이다. 잔치를 벌이고 기념행사도 가졌을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며 자부심을 심어줬을 것이다. 아이들은 화랑의 정신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승전기념일은 아마도 신라가 망하면서 잊혀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잊혀졌던 승전기념일은 오랜 세월 끝에 부활할 수 있었다. 신라가 '통일'을 완수한 날을 양력으로 따져서 4월 5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바로 식목일이다. 며칠 전 산불로 얼룩졌던 식목일은 신라의 승전기념일이기도 했다. 식목일은 단순히 나무만 심는 날이 아닌 것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러시아로 건너가 복수의 칼을 갈았던 조선사람들이 반드시 지켰던 날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승전기념일인 7월 8일과,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승전기념일인 7월 28일이었다. 러시아의 조선사람들에게 승전기념일은 남달랐다. 이 날만 되면 찬란했던 승리의 날을 되새기며 조국의 광복을 다짐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조선사람들은 또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도 잊지 않았다. 8월 29일을 '대욕일(大辱日)'로 정했다. 지금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국치일'이 대욕일 이었다. 이 날을 기념일로 정해 혹시라도 느슨해질지 모르는 적개심을 다시 한번 가다듬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기념일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건국기원절'이었다. 오늘날의 개천절인 10월 3일을 건국기원절로 삼았던 것이다. 비록 나라를 빼앗기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더라도 우리는 한 민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개천절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기념일이었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의 억지 논리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9백 수십 차례의 침략만 받고 살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왜구' 몇 명이 와서 분탕질을 친 것까지 모두 합친 수치다. 따라서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한 경우는 극히 적다고 깎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럴수록 승전기념일을 더욱 지키고 기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결코 약한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다. 정부가 승전기념일인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겠다고 한다.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 이유다. 하필이면 제외시키겠다는 날이 승전기념일이다. 나무는 아무 때나 심을 수 있다고 하지만 승전기념일은 아무 때나 맞을 수 없는 것이다.

경제단체들은 한술 더 뜨고 있다. 개천절까지 공휴일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단체를 하는 사람들은 단군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잊고 있는 것일까. 일할 날이 그렇게 모자란다면 차라리 5일 근무제를 백지화하자고 할 것이지.

(데일리안 / 김영인 논설위원 2005-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