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기의 한국학 살리려면…

최근 영국 옥스퍼드에서 날아온 한 편의 신문기사가 한국학에 애정을 쏟고 있는 국내외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옥스퍼드대학이 한국학 과정의 운영을 위한 적절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2007년 6월에 한국학 프로그램이 폐지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였다. 1994년 한국국제교류재단 지원으로 한국학 교수직이 설치되면서 옥스퍼드대학의 한국학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 한국학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기는 하지만, 유럽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옥스퍼드대학에서 한국학 과정이 운영된다는 것은 한국학 발전을 위한 실질적 의미와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옥스퍼드대학 상황을 해외 한국학의 ‘위기’로 읽는 것은 타당한 해석일 수 있다.

한국학 과정의 존폐와 관련된 ‘한국학의 위기’는 옥스퍼드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중국학과 일본학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학보다 우위를 선점하여,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한국학의 인지도와 관심은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와 기업 차원의 꾸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은 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몇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국외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역학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학이나 정부와 기업 차원의 대규모 재정 지원이 눈에 띄는 일본학의 국제적 위상과 비교할 때, 한국학의 현재 위치는 여전히 상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인 재정적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특히 기업들의 지원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옥스퍼드대의 경우 일본의 대표 기업 가운데 한 곳이 그 기업의 이름을 따서 일본학연구소 건물을 기증하여 안정된 일본학 교육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한국학은 별도의 건물이 없어 한국학 교수의 연구실이 일본학연구소 안에 있고, 한국학 강의도 대체로 그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학 프로그램을 진흥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학생 수가 증가한 뒤에 그것을 보고 학교 측이나 기업들이 부대시설 및 운영 경비를 지원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또 하나는 먼저 한국학의 발전을 기대하는 학교 및 기업이 후원한 후 그 홍보 효과에 힘입어 학생 수가 증가하고 이것이 한국학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역학의 후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학은 일단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해외 한국학 지원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미지 향상에 기여함은 물론 한국학 브랜드의 가치와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중요한 몫을 담당할 것이다.

한국학의 세계적 발전을 위해서는 인적, 물적 네트워크의 활성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전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국학 교육 및 연구의 현황이 기관들 상호 간의 교류와 네트워크 구성을 통해 공유되어야 한다. 이는 각 기관의 교육과 연구의 효율성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비해 부족한 한국학의 재정적 기반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올해 8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하고 있는 세계한국학자포럼에서는 한국학자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한국학 자료의 세계적 공유의 가능성을 모색할 예정이다.

올해는 국가의 주권을 회복한 지 60돌이 되는 감격스런 해이다. 주권을 되찾았던 60년 전의 감격을 올바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한국학의 좌표 또한 재점검하고 활성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세계 한국학 연구자, 정부, 기업의 공동보조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기이다.

<이광호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

(세계일보 2005-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