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은 국력이다

27년전인 1978년 7월 중순 필자는 미국취재여행 중 보스턴 근교 케임브리지에 있는 명문 하버드대학(본부) 학장을 그의 집무실인 유니버시티홀 4호실에서 만났다.

존 폭스 학장은 서양사전공 학자였지만, 학장실에는 일본의 도꾸가와(德川)시대 민화인 듯한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다.

그는 한·일 관계를 의식하는 듯 “하버드는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와 관련이 깊다”고 설명하는 걸 잊지 않았다.

미국의 동양학분야에서 큰 산맥을 이루는 하버드 옌칭(燕京)연구소에는 쟁쟁한 일본학 전공 학자들이 많고, 이들은 대개 일본에 우호적인 지일파(知日派)로서 미국의 대일정책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우리의 ‘친일 매국노’와는 다른 뜻에서 친일적인 여론과 정책을 유도해내는 미국내 ‘오피니언 리딩 그룹’의 하나다.

일본이 이들에게 적지 않은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은 이미 이 무렵 미국 하버드대학의 옌칭연구소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의 일본학연구지원을 위해 신흥선진국답게 돈보따리를 풀고 아낌없이 재정지원을 하고 있었다.

한 나라의 국제적 영향력 행사에는 정부간 외교의 잠재적 기반구축을 위한 학술연구통로의 확보가 필수적임을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에 깨달았던 것이다.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서방세계에서 보기에 늘 후미진 ‘미지의 세계’에 속한다.

아마 1960년대 초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국어학자 이숭녕 교수(서울대)가 필리핀에서 열린 세계언어학대회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한국은 후미진 ‘미지의 나라’

필리핀의 한 젊은 언어학자가 “한국에서는 자연과학을 영어로 가르치는가, 한국말로 가르치는가?” 묻더라고 했다.

이에 이숭녕 교수는 “한국말로 가르친다”고 했더니 필리핀인 학자는 “그럴 리가 있느냐”고 대들더라고 했다.

이 논쟁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필리핀의 원로 언어학자가 “한국에서는 자연과학을 한국말로 가르칠 수 있다”고 타일러 겨우 논쟁이 끝났다고 했다.

필자도 1970년 서독에서 “한국 사람은 일본말을 쓰는가, 중국말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음을 소개한 바 있다.

(2004년 10월13일자 ‘머슴인가 상전인가?’ 제하의 본란)뒤늦게나마 우리도 서방각국의 한국학연구지원에 나서면서 유럽과 미국의 큰 대학에 한국학강좌가 개설되고, 전문적인 연구자들이 한국의 언어와 역사·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한국의 재정지원규모는 일본에 비해 ‘새발의 피’라고 할 만하다.

국제교류재단이 36개국 91개 대학에 지원한 예산은 54억원(2004년도)이지만, 일본은 5억 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130개국에 뿌리고 있다한다(조선일보).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이 앞으로 재원조달이 안되면 2007년6월에 한국학과정을 폐지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3월29일) 영국에서는 이밖에도 더럼대학이 지난해 한국학강좌를 폐지했고, 뉴캐슬대학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한다.

‘새발의 피’지원…발상의 전환을

우리가 고립된 섬나라 사람으로 살 생각이 아니라면, 또 일제 식민시대 창씨개명을 우리가 원했고, 독도는 ‘다께시마’라는 식의 거짓말을 달게 받아들일 생각이 아니라면, 해외 한국학과정의 위기는 우리자신의 위기다.

우리 국제교류재단의 지원금 54억원(작년도)의 100배에 육박하는 일본학 지원금 5억 달러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해동안 땀흘려 벌어들인 무역흑자의 4분의 1인 20억 달러를 해외유학과 연수비로 펑펑 쏟아 붓는 얼빠진 나라이고 보면, 아마 어느 누구도 ‘각박한 주머니 타령’을 늘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흔히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라고들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본, 중국, 대만에 이어 외환보유고 세계4위를 자랑하는 나라다.

이러한 규모에 비해 한국학 지원금은 ‘새발의 피’와 같다.

한국학은 우리가 세계와 대화하는데 중요한 통로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그래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으로 이해하는 지한파(知韓派)는 우리의 생존·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반이다.

그들은 우리의 손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우호의 담을 쌓아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영향력을 우리의 국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학의 친구들은 일본의 국력이 된다.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독도문제도 때로는 한국학 친구들의 몇 마디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학지원 정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미디어오늘 2005-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