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보적 외교안보 정책이 경제 흔든다

지난 2년은 국내 정치 분야에서 진보적 개혁지상주의가 경제를 어렵게 하더니 올해는 진보적 외교·안보정책이 경제를 어렵게 할 것 같다. 모처럼 경제가 풀리나 했는데 최근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진보적 언급 및 외교통상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의 주관 없는 뒷북치기 발언들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어 걱정이다.

외교부 장관은 독도와 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대통령의 대일(對日) 초강경 발언을 외교적으로 수습하기는커녕 “외교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할 때 대통령께서 명쾌한 지침을 주셔서 앞길을 가르쳐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외교전쟁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방부 장관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의 동맹국이자 십수 세기 동안 우리를 속국화하려 했던 중국에 추파를 보내며 한미동맹을 훼손하고 있다.

감정적 발언 고립 자초할 뿐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경제 및 안보 역량에 대한 대통령과 참여정부 핵심 세력의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은 “한국이 세계 10위의 경제력으로 든든해졌고 자위적 국방 역량도 곧 갖추기 때문에…”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이 국민총생산의 수치 면에서 세계 11위에 이르렀다는 것이 곧 우리가 ‘1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경제 강국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11위의 경제력과 세계 5, 6위 경제력 사이의 격차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고, 다만 순위를 매기다 보니 우리가 11위에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월스트리트 음모론이 암시하듯이 미국 투자가들이 투자액의 20% 정도만 우리 증시에서 빼내면 곧바로 위태롭게 되는 연약한 존재다. 미국이 우리의 주력 수출품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만 취해도, 국제유가만 급상승해도, 미국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휘청거리는 ‘너무나 취약한’ 경제다.

우리의 국방이 자위 역량을 곧 갖춘다는 생각 또한 비현실적이다. 일본 독일 영국을 포함해 미국을 제외한 이 세상의 어느 나라도 자위적 국방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 강국 일본과 핵폭탄을 보유한 유럽 국가들마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년간의 경험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 경제는 경제적 요인보다는 정치 안보와 같은 비경제적인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한미 공조가 흔들리면서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줄었고 이것이 경제성장률 하락을 초래했다. 그 후에도 한미 공조에 금이 가면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와 후방 배치를 서둘렀고, 이것이 막대한 정부 예산 소요를 유발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국가 재정을 더 어렵게 했다. 4년 만에 모처럼 증가세로 돌아섰던 외국인 투자가 올해 들어 급감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일본에 대해서도, 경제가 어려워지더라도 이참에 뿌리를 뽑겠다는 실현성 없는 감정적 대응보다는 적어도 대통령과 정부 차원에서는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 신중히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참여정부 외교안보 정책이 이렇게 진보적인 이유는 아마도 이 분야의 핵심 인사들이 군사독재 시대에 핍박을 받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우리가 민주화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은 군사독재를 후원한 사악한 존재라는 반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미국이 공산독재로부터 우리를 구하고 오랜 기간 경제적 후원으로 지금 이만큼 먹고사는 데 도움을 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외국에서 살아 본 경험이 별로 없는지,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보잘것없는 약자이며 강한 나라들과의 동맹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對日외교 정치-경제 분리해야

대통령이 이러한 폐쇄적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한 우리 외교·안보 정책은 자신의 진정한 역량을 알지 못한 채 오랜 친구들을 잃고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미 간, 한일 간 경제교류를 해치고 모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취약한 우리 경제를 흔들까 봐 걱정이다.

<나성린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교수·경제학>

(동아일보 200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