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 학문의 해외투자

연구 기회를 얻어 작년 1년 동안 외국에 머물다 돌아왔다. 귀국 후 한 달 동안 나는 옛 나무꾼의 시간을 사는 느낌이었다. 나무 하러 갔다가 깊은 산에서 바둑 한 판을 두고 내려 왔는데, 집으로 돌아와 보니 30년의 세월이 지나 있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전면적으로 개편된 버스 노선과 번호가 그렇고, 새롭게 단장된 시청 앞 광장이 그렇고, 더 이상 세 자리 휴대전화 국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그렇고…. 세계의 시계에 비해 한국의 시계는 무척 빠르게 돌았나보다. 아직도 한국의 시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느낌이어서, 작년에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A는 영화학도다. 한국 영화를 전공하는 박사 과정 유학생인데,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조예도 상당해서 그야말로 유망주라는 느낌을 준다. 그는 학위를 마치고 국내로 돌아오는 것 보다는 미국의 대학에서 자리잡아 한국과 한국 영화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고 싶어한다. 나는 꼭 그렇게 되길 빈다. 한국적인 시각과 세계적인 시각을 아우르는 탄력적이고 균형있는 그의 시선과 학문의 깊이를 믿기 때문이다. 그의 한국 영화 강의와 그가 주관한 한국 영화 축제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을 나는 직접 보았다.

B는 내가 머물던 대학의 세계 작가 프로그램 책임자로 있으면서, 한국문학을 아끼는 그리스계 미국 시인이다. 몇 차례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번역가와 함께 한국 시 번역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황지우를 비롯한 여러 한국시인들의 시를 읽고 한국문학의 가능성에 매료되었다는 그는, 그 대학에 한국문학 담당 석좌 교수 자리를 신설하고 싶어한다. 물론 한국에서 일정한 기금을 조성해주면 그에 상응하는 대응자금을 그 대학에서 마련해 운영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한국 측에 그 제안을 했는데, 아직 한국 쪽으로부터 이렇다할 대답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요즘 들어 어쩌면 B는 한국과 한국문학을 위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옥스퍼드대에서 적절한 재원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오는 2007년 6월 한국학 과정을 폐쇄한다고 결정한 뉴스를 그도 접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식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일본의 우익 인사들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뉴스만큼, 혹은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독도를 일본령 다케시마로 표기했다는 뉴스만큼 충격적일 수 있다.

근대 이후 일본이 외국에 일본학을 위해 투자한 액수에 대해 나는 구체적인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세계 유수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일본학 과정이나 대학 도서관에 부설된 일본학 도서관의 면모를 볼 때마다,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세계 지도 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하게 된다. 또 일본 국비로 일본에서 유학한 많은 세계인들의 숫자 또한 우리는 확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국내에서 일본에 대해 얼마든지 분노할 수 있고 또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분노와 비판이 단지 국내용이라고 단칼에 폄훼되는 사태에 대해서 우리는 냉정하게 숙고해야 한다.

해외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존의 규제를 전면적으로 검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국부 유출 문제를 고려해야겠지만 여러모로 적극성을 띨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 시점에서 직접 투자뿐 아니라 간접 투자의 중요성도 거듭 환기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계를 무대로 적극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세계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직접 투자를 통해 얻은 부를 일정하게 간접 투자에 환원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21세기를 살기에 우리 땅은 너무 좁지 않은가. 이제야말로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국내외에 A와 같은 진취적인 젊은이들이 많다.

그리고 B와 같이 한국을 도우려는 외국인사들도 적지 않다. 이 모든 에너지들을 지혜롭게 결집해 새로운 백년대계를 기획할 때 다.

<우찬제 / 문학비평가·서강대교수>

(문화일보 200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