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날조인가 선택인가 

한승조 교수의 "식민지배 축복" 망언,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다카노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는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일본 땅" 발언, 2001년 역사교과서 파문의 중심이었던 일본 후소샤 교과서의 강화된 역사왜곡 그리고 중국 초급중학교용 교과서의 "발해는 당나라 지방정부" 기술 등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중국, 이 두 나라의 역사 왜곡이 왜곡을 넘어 '말살'로 치닫는 듯하다.

여기에 최근 독도 문제까지 가세해 2005년은 한일 두 나라의 '우정의 해'가 아니라 '대립의 해'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이런 시국에 의미 있게 읽힐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세계 11개국의 역사교과서를 전쟁과 식민지 지배라는 테마로 살펴본 <세계의 역사교과서>(이시와타 노부오·고시다 다카시 편저/작가정신/13000원)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배타적 내셔널리즘을 조장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교과서와 그들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일교과서 대화에 지속적으로 동참해 온 편저자들은 '새역모'의 역사교과서(후쇼샤)를 비롯한 일본의 검정 역사교과서를 두루 살피면서 역사기술의 문제점과 그 심층에 깔린 우익사관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리고 시야를 넓혀,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교과서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자 세계 11개국의 역사교과서를 비교 검토한다.

2001년 일본발 교과서 왜곡 파문 이후 각국에서 쏟아져 나왔던 비판 일색의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평화와 인권, 공존 지향의 역사교과서를 만들어나갈 것을 촉구하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관점에서 썼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날조'인가 '선택'인가

각국이 같은 역사를 두고 각기 다르게 인식하거나 기술하는 것은 '날조'라기보다는 '선택' 또는 '추출'의 기술방식 때문이다. 즉,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만든다기'보다는 사실을 전부 쓰지 않는 측면이 큰 것이다.

말하자면, 자국에게 이롭지 않은 정보는 삭제하고 묵살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은 많든 적든 간에 어느 나라의 역사교과서에서나 나타난다.

특히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전쟁'과 '식민지배'가 횡행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는 세계대전으로 인한 가해-피해 또는 지배-피지배로 많은 나라가 팽팽한 '힘의 논리'라는 그물에 얽혀 있을 때였다.

근대 국민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몇 나라는 지나친 패권주의로 타국을 침범하고 억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나라를 빼앗긴 나라들은 안팎으로 주권회복에 온 힘을 쏟았다. 그래서 다른 어느 시기보다 이 시대의 역사를 다룬 교과서들이 자국의 역사적 사실을 미화하거나 축소 또는 은폐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폴란드는 2차 대전 당시 큰 피해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패한 내용보다는 민중 주도의 바르샤바 봉기에 이상할 정도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기술하며, 한국은 역사교과서 전체가 민족주의사관으로 점철돼 타민족과의 공존을 배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저자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그 한계와 장벽을 넘고자 노력하는 나라들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교과서는 전쟁 책임을 나치스 또는 히틀러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국가 전체의 책임으로 인식한다. 2차대전 개전 당시 국민들이 전쟁을 적극 찬성했다는 사실을 교과서를 통해 알리고, 유대인 박해에도 일반 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한 사진과 자료, 칼럼을 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전쟁의 책임과 보상에 대하여, 그것이 주는 폐해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또 해외 식민지뿐만 아니라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식민지배가 현재의 제3세계 문제나 남북문제의 단초였다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반성의 자세를 드러낸다.

영국 교과서 역시 역사 기술의 방향을 돌려 예전에는 자신들이 지배했던 이집트, 케냐, 인도 등에 대해 "미개지를 개발하여 근대화하였다"는 등 피지배국을 멸시하고 식민지배가 근대화에 공헌했다는 식으로 기술하였으나 지금은 역사적 사례, 자료 등을 활용하여 "그 지역의 진보를 방해했다"는 등 자기비판적인 내용을 덧붙이게 되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교과서 우경화에 대응하여 동남아시아 국가의 교과서 기술에 대전 중의 일본군에 대한 기술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대항의식이나 반발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라가 신중하게 일본의 재 군국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편저자들은 "각국의 정치적, 역사적, 국제적 상황이 제각각 다르고, 그러한 상황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통의 역사를 가진 두 나라의 교과서라면 가능한 한 차이가 적거나 없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바로 여기에 역사교과서의 국제적 교류 내지는 국제적 대화의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역사인식과 역사 기술 외에도 역사교육의 환경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고 있다.

"일본인들의 머릿속에는 교과서에 적힌 것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인식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그냥 외워버립니다. 그건 스스로 납득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의견에 맞닥뜨리면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아니면 보다 자극적인 의견에 쉽게 굴복해버리고 맙니다. (중략) 독일의 경우는, 교과서란 여러 가지 학습자료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고,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며, 그것만 외우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하나의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중시합니다."

생각하고,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시각에서 비판할 수 있도록 여러 관점을 다양하게 소개하면서 교육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한 독일의 교과서는 교과서에 대한 맹목적 신뢰에서 벗어나지 않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역사교과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역사의 통합이 가능하려면 역사를 바라보는 공통의 시각이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의 교과서는 일률적이지 않고, 또한 한 차원에서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종합적이고 다각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가령,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에 대해 압정에 시달리던 아시아인들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고, 당사자인 일본은 종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비극으로 기록한다.

이밖에도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가령, 일본의 식민지배에 피해를 입었던 한국은 베트남전쟁 당시의 가해 책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인도네시아의 독립에 일본의 지배가 기여한 바는 무엇이며, 인도네시아인들은 그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는가.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이 죄 없는 일본계 미국인을 격리 수용한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했는가. 한국사에서 왜구의 존재는 과연 일본의 해적이었을 뿐인가. 영국은 식민지 상실을 교과서에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독일은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을 어떻게 청산하였고, 또 하고 있는가.

폴란드는 소련을, 말레이시아는 일본과 네덜란드를,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보는가.

그런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과제인데, 다른 문화의 역사적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 이해의 바탕에는 정치권력 주도의 '정사'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인권과 평화'의 역사인식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추상적인 말이긴 하지만, 국민국가의 역사에 길들여진 우리가 경청하고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며 '새역모'의 역사인식을 엄중히 비판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 김혜정 기자 200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