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일감정‘적정’수준 통제

교과서 왜곡은 항의, 日제품 불매 운동 등은 차단…국익 우선 주의 전략

흔히들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정랭경열’(政冷經熱,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겁다)이라고 표현한다. 이 말에 걸맞듯이 중국과 일본의 무역규모는 지난 2004년까지 6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JETRO(일본무역진흥기구)의 발표(2월 21일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일본의 무역액은 2003년에 비해 26.9% 증가한 1,680억 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보였다.

지난해 일본의 대(對) 중국 수출액은 29.0% 늘어난 738억 달러, 수입액은 25.3% 증가한 942억 달러로 각각 집계됐다. JETRO는 올해 양국의 무역액은 1,900억 달러에 달해 그 중요도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양국의 외교 관계는 과거사와 영토 문제 등을 비롯해 대만 문제 등을 각종 현안에서 갈등과 대립이 심화하는 등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중국의 반일(反日) 감정은 최근 들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불붙기 시작해 가두시위,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에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 반일 감정을 증폭시켰다.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3일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의 선전시 시민 3,000여명이 대규모 반일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흔들며 일본 백화점인 세이부 앞으로 몰려가 “일본제품을 사지 말자”,“고이즈미 타도”,“국가적 치욕을 잊지 말자”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을 파괴하는가 하면 준비한 일장기를 불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지난 2일에는 쓰촨(四川)성의 청두(成都)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가 일본계 수퍼마켓에 몰려가 벽돌과 물병 등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광고판을 부수었다. 선양(瀋陽)과 창춘(長春) 등 동북 지방에서는 아사히(朝日)맥주 등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상하이(上海)와 광저우(廣州) 등 대도시는 물론 중소 도시에서도 반일 시위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중국의 네티즌들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지난 달 31일 현재 서명자가 2,220만 명을 돌파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3,000만 명의 서명이 담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청원서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국제문제 시사잡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4월 1일자 최신호에서 평론을 통해 현재 중일간에 존재하는 문제를 교류부족 때문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로, 관영 언론이 발간하는 잡지가 이런 정도로 대일 강경 입장을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처럼 중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돼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반일 감정이 위험수위로 올라가자 일본도 강력하게 대응하고 나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4일 중국 내 일본인들과 일본 기업들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중국에 촉구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중국 내에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일본 상점에 대한 공격이 빈발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일본 외무성도 중국 내 일본 기업인들의 이익을 보호할 것을 중국 정부에 요구했다.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4일 왕이(王毅) 주일 중국대사에게 “중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안전과 일본 기업의 정상영업이 보장될 수 있도록 중국의 협력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중국 정부가 반일 시위를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은근히 반일 감정을 조장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여론을 조정해온 것이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일본의 항의 때문은 아니지만 일단 반일 시위가 자칫하면 폭력사태로 변질될 수 있다고 보고 적절한 통제를 시작했다. 홍콩의 〈밍바오〉(明報)는 5일 공산당 중앙 선전부가 중국 언론 매체에 통지문을 보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보도할 때 그 수준을 낮추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공산당 선전부는 또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보도 중단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표적 인터넷 매체인 신랑왕(新浪網)은 대대적으로 전개했던 반일 서명운동의 배너를 네티즌이 찾기 힘든 자리로 옮기고 크기도 축소했다. 관영 인터넷 매체인 신화왕(新華網)은 아예 반일 운동과 관련한 검색어를 봉쇄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일본제품 불매 운동 등 반일 감정이 너무 고조되자 이를 냉각시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우젠민(吳建民) 중국외교학원 원장은 지난 2일 친중국계 신문인 홍콩 〈대공보〉(大公報)와의 회견에서 “중국의 국가이익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하면 국가이익을 더 잘 지킬 수 있는지 전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면서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손해가 크다”고 밝혔다.

중국으로선 경제 발전을 위해 일본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일 운동이 과격하게 흐를 경우 일본과의 경제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계산한 조치이다. 적당한 선에서 일본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중국 정부는 역사 교과서 왜곡 등에 대해 비판하는 강도를 전혀 낮추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과의 직접적인 대립은 피하되 각종 현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따진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중국 외교부는 5일 주중 일본 대사관에 역사교과서 문제를 정식 교섭하자고 요청했다.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일본이 중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동으로 중국인들의 강력한 불만을 사고 있다고 밝히고 중국인들이 이런 정서는 일본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역사문제에 불명확한 태도를 보이는 일본측을 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일본이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내다볼 것과 역사문제에 있어 책임지는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 정부는 ‘국익 우선주의’에 따라 감정의 극단적 표출보다는 이를 적절한 선에서 조절하면서 이를 통해 상대방에 압력을 행사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으로 중국의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철저히 계산된 대일 전략을 우리가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업코리아 200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