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학 교수 “역사학계 아직도 식민사관 잔재”

독도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둘러싸고 한·일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올바른 역사 연구를 위해서는 먼저 식민사관 극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봉학 한신대 교수(52·한국사)는 최근 펴낸 ‘한국문화와 역사의식’(신구문화사)에서 “역사학자들의 전문적 연구가 대중은 물론 지식인들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사를 비롯한 국내 학계의 연구 풍토를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 후기 사상사가 전공인 유교수는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 ‘조선 후기 학계와 지식인’ 등의 저서를 펴낸 중견 국사학자. 한국사 연구자가 저서를 통해 국내 역사학계를 내부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유교수가 강도 높게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는 곳은 학계에 남아 있는 식민사학. 근래 친일청산을 위시한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데에는 역사학계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해방 후 역사학계는 민족주의 사학 정립 등을 통해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를 떨쳐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두들 식민사학이 극복된 양 알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식민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교수는 식민사관의 대표적 사례로 ▲백제사 연구 ▲국립중앙도서관의 고서 정리 상황 ▲수원 화성에 대한 인식을 꼽았다.

백제의 경우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연구가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초기 도읍지였던 하남위례성을 제외시키면서 백제사를 전체의 3분의 1로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유교수는 “해방 60년이 다 되도록 하남위례성의 위치조차 비정하지 못한 것은 식민사학에 얼마나 오랫동안 길들여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하남위례성이 풍납토성으로 확인된 것은 2~3년 전에 불과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의 고서 분류법은 아직도 조선총독부 도서관의 체제를 따르고 있다. 유교수는 “일제가 조선의 책이라는 뜻에서 ‘조(朝)’로 시작해 일본어 ‘아이우에오’ 다섯 모음에 따라 도서를 분류했는데, 지금은 ‘조’는 한국이란 뜻에서 ‘한(韓)’으로, ‘아이우에오’는 ‘가나다라마’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은 정조가 건설한 개혁 도시였으나, 일본인들이 왜곡한 그대로 일개 ‘군사건축물’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게 유교수의 주장이다.

우리 역사교과서 내용에 대한 비판도 제기했다. “현행 우리 역사교과서에는 성리학과 실학을 대립적 구도로 설정해 성리학은 낡은 것, 실학은 좋은 것으로 기술해 놓았는데 이는 사실과 달라요. 또 실학자들을 재야 지식인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박지원·홍대용·박제가 등은 요즘으로 치면 시장·군수를 지냈으며, 이서구·서유구는 장관을, 다산 정약용도 차관보급인 높은 벼슬을 지냈으니까요.”

유교수는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물론 함석헌, 조지훈 등과 같은 지식인조차도 불교와 유교 등 전통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할 만큼 식민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식민사학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에 대한 주체적이고 균형잡힌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가 강조한 것은 역사연구의 전문화와 체계적인 인력 양성.

“수만권의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전문 사서는 있어도 역사전문가는 한 명도 없습니다. 당연히 자료 활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요. 또 동북공정이나 독도 문제가 터질 때마다 허둥대는 것도 인력 양성이 뒷받침되지 않아서입니다. 지금은 국사 교육 강화에 앞서 연구자를 양성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야별 전문 연구소를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경향신문 / 조운찬 기자 200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