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사'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일본우익교과서다, 중국 동북공정이다, 독도 분쟁이다 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가만히 앉아 있다간 과거의 우리 역사도, 지금의 우리 영토도 다 빼앗길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바른 처방은 정확한 진단에 있음은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머리에 부스럼이 났는데 엉뚱하게 맹장을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일본우익교과서와 독도분쟁과 동북공정이 3각 축을 이루는 일련의 역사분쟁에 대한 우리의 진단은 어떠하며, 그것은 정확한가?

이런 물음은 그 진단에 따른 처방의 유효성 여부를 판단하는 지름길이다.

먼저 일본과 중국이 도발했다고 하는 역사분쟁에 대한 우리의 처방전을 보자.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가장 호소력이 있으면서도 가장 강력한 처방전으로 내세워지고 있는 것이 바로 '국사를 강화하자'는 구호이다. 국사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저들의 역사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국사교육 강화는 대내용이면서도 대외용 처방이다. 내적으로는 우리의 국민들에게 국사를 확실히 체득케 하는 한편, 이를 통해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이며,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대외적으로 확인케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압권은 국사교육발전위원회(위원장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가 지난 29일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보고한 '국사교육발전 방안'이다.

이 방안은 역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중학교 사회과목에서 역사를 분리ㆍ독립시키고 고교의 한국근현대사를 필수과목화하며 각종 공무원 시험에도 국사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요즘 우리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이런 '국사교육발전 방안'이 상당한 지지력을 확보할 듯하다. 여기에서 묻는다.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과 역사왜곡을 방지하는 것은 관계가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국사교육 강화와 역사왜곡 방지는 전혀 별개다.

우리가 중고교 일선 교육현장에서 국사과목을 필수화하고, 공무원 시험에서 국사를 필수과목화한다 해서 역사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역사'가 실증한다.

제1차 일본우익교과서 사태로 2002년 출범해 최근 활동이 종료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제아무리 활발히 움직였다 해도 그것이 결코 교과서 문제 재발을 막지 못했다. 우익교과서는 외려 '개악'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북공정에 맞서겠다고 지난해 3월 출범한 고구려연구재단이 동북공정을 막았는가? 결코 막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해도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공동위원회가, 고구려연구재단 출범이 마치 역사분쟁을 막을 수 있는 만능 특효약인 것처럼 요란하게 선전되고 있다.

시민단체가 열렬히 동조하고, 언론과 국사학계가 앞장섰으며, 정치권도 부화뇌동한 '대(對) 역사분쟁' 분쇄책들, 그것은 여지없이 실패했으며, 실패하고 있다.

왜 그런가?

말할 것도 없이 역사분쟁과 우리의 국사교육 강화는 전혀 무관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고교 현장에서, 나아가 공무원 시험에서 국사를 필수과목화한다 해서 역사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단도 엉망이요 처방도 틀렸다.

그럼에도 우리의 국사교육강화가 역사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요란하게, 그리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선전되고 있다.

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선전하는 사람들이 실은 '국사'를 독점하고 있는 부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국사 시험 출제자들이다. 피수험생들이 아니다. 언론이 그렇고 학계가 그렇고 시민단체가 그렇다.

누가, 그리고 왜 '국사'를 강요하려 하는가?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