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아 삼국의 상호 혐오증

동양 사람은 생사대해(生死大海)에 산다고 여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의 모든 현상을 큰 바다에 비유하는 불문(佛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 역시 생사존망을 범상히 보지 않는다. 결국 사람은 모두 천수(天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스티븐 호킹은 상상력과 사고 작용을 통일시켜 ‘상상력으로 사고하라’고 말하는 영국 천재 우주물리학자이다. 10여 년 전에 그를 인터뷰하면서 생일과 사망일의 일치에 관해 질문 한 적이 있다.

질문: 생일에 관한 질문을 하겠다. 호킹 교수의 생일은 1월 8일이다. 같은 날 갈릴레오가 태어났다(이때 호킹 박사는 컴퓨터 언어합성기의 키보드를 눌러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리고 갈릴레오의 사망일이 뉴튼의 생일과 같다고 들었다. 맞는가? 이는 매우 ‘운명적’으로 들리는데(이때 그는 또 한 번 ‘아니다’의 키보드를 눌렀다).

호킹 답변: 나는 갈릴레오가 태어난 것과 같은 날짜에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가 죽은 것과 같은 날짜에 태어났다. 또 뉴튼은 갈릴레오가 죽은 그 해에 태어난 것이지 생일날짜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뉴튼 보다 약 300 살 젊다고 말할 수 있다.

질문: 바로잡아주어 감사하다.

생일이 일치 하던가 생일과 사망일이 일치 한다면 ‘운명적’이라고 느낄 법도 한데 호킹박사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틀린 부분을 바로잡는 답변을 했다.

안중근 95주기, 베토벤 178주기

일전에 전자편지 한 통을 받았다. 발신인은 배동인 교수(전 강원대학교 사회학과)이다.

“2005년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께서 돌아가신지 95주기 되는 날입니다. 독도를 지키라고 우리들에게 외치고 계시는 듯합니다. 그리고 또한 루드비히 판 베토벤 선생께서 돌아가신지 178주기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두 영웅을 기리며 우리 모두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을 함께 들읍시다!” 배교수는 동서양의 두 ‘영웅’을 운명론으로 연결지으며 영웅 교향악을 모두 함께 듣자고 제창했다.

가까운 중국 산둥대학(山東大學)에 유학한 제자 하나가 중국인과 일본인에게서 느끼는 인상을 전해왔다. 일본인 친구와 중국인 친구를 몇 명 사귀었는데 양국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친절하지만 솔직하지 못한 것 같고, 중국인은 수수하고 명랑하게 여겨진다는 것이 한국 신세대가 첫 눈으로 전하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특징 비교이다. 중국인이 일본인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내가 홍콩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할 때의 일이다. ‘동양반 강의실’은 동아시아 사람만 모인 자리였다. 교수진은 북경계·대만계·홍콩계의 중국인으로 짜여지고, 수강생은 일본인과 한국인으로 구성되었으니 영락없는 삼국인의 축도였다. 어느 날 중국어 작문시간에 나는 한·중·일 삼국인이 서로 비하하는 말을 소재로 삼았다. 중국인은 일본인을 ‘꾸이즈(鬼子)’라고 욕했다(국내에서 몇 년 전에 상영된 중국 영화 ‘귀신이 온다’는 바로 못된 일본 침략자를 가리킨 제목이다). 또 중국인은 일본인을 경멸하고 혐오할 때 동양 까마귀라는 뜻으로 ‘둥양우(東洋烏)’를 썼다.

일본인은 힘든 일만 하는 하급 노동자라고 하여 중국인을 ‘쿨리(苦力)’라고 경멸한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조센징(朝鮮人)’이라고 깔봤다. 중국인은 한국인과 만주족을 동쪽의 오랑캐로 멸시하여 ‘둥이(東夷)’라고 지칭했다. 이에 대해 한국인은 중국인을 ‘되놈’ 또는 ‘왕서방’이라고 낮추어 불렀다.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비칭은 ‘왜놈’ ‘왜년’과 ‘쪽발이’가 대표적이다.

한·중·일 비어(卑語)의 비교

한반도가 큰 전란에 휩싸인 일은 역사상 세 번 있었다. 몽골의 침략,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침략 그리고 한국전쟁(6·25)이다. 그 중 민족적으로 가장 원망을 산 것은 일본인의 침략전쟁(도요토미의 침략전쟁)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제주대학 조문부 명예교수의 견해).

요즘 한국인은 ‘죽도는 우리 땅’이라고 우기는 ‘신일본 패권주의’로 심화를 끓이고 있다. 중국 역시 ‘고구려는 우리 땅’을 강변하는 현실이다. 이렇게 동양 삼국은 영토분쟁의 천하대란 상태에 빠졌다. 영토 욕심 앞에서는 중국도 일본도 한 치의 양보가 없다.

한국에 와서 민속학을 전공한 일본 학도 사카쿠라 마사야스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그는 과거의 일본 쇼비니즘의 폐해를 알고 천황제도에 대한 반 테제로 한국 무속연구에 몰두한다고 말했었다. 그는 우리문화를 연구할 때의 어려움은 문화의 덩어리가 크고 성격이 복잡한 터에 민족주의 감정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는 점이라고 했다. 사카쿠라 같이 과거의 침략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한일 간의 문화적 뿌리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우리 편이다. 편협한 민족주의 감정을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

<안병찬 /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내일신문 200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