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한국, 정신분열적 태도. 경제국수주의" 파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지가 '정신분열증적 태도' '경제 국수주의'라는 원색적 용어를 동원, 최근 우리 금융당국의 외국자본에 대한 정책을 맹비난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FT, 원색적 표현 동원해 한국 맹성토
  
FT 아시아판은 31일 `한국의 새로운 규정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화났다'는 제목의 1면 머릿기사와, `한국의 외국자본에 대한 정신분열증적 태도에 투자자들이 공격받다'라는 제목의 3면 해설기사, `외국자본 유치에 나쁜 방법, 경제 국수주의가 한국의 미래 위협'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최근 한국의 경제정책을 맹성토했다. 작심하고 융단폭격에 나선 분위기이다.
  
FT가 문제삼은 것은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지난 29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주식 5%이상 보유시 보고제도. 금감위가 개정한 `5% 보고 서식', 일명 '5% 룰'은 주식의 취득자금 세부 조성내역을 제시해야 하며 보유자의 법인 또는 단체의 법적 성격과 임원 현황, 최대주주에 관한 사항 등을 기재토록 하고 있다.
  
FT는 "한국의 새로운 5% 룰은 일부 외국 투자자 규제 목적으로 급작스레 도입된 제도"라고 비난하면서 "보고 대상인 ‘경영권에의 영향’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보고자의 최대 출자자등까지 보고하도록 한 것을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했다.
  
FT는 특히 "이 개정안은 소버린 자산운용과 SK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일은행 매각이익과 관련해 세금을 내지 않은 것에 대해 대중들이 분노한 이후 나타난 변화"라며 "이 변화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금융 허브가 되겠다는 야망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며 격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익명의 외국 펀드매니저의 말을 빌어 "한국이 정직하지 않은 것에 정말로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FT는 또다른 익명의 외국계 금융사 고위관계자 말을 빌어 "한국은 외국인 투자에 대해 완전히 `정신분열증' 환자와 같다"며 "한 발은 액서레이터를 밟고 있고 다른 한 발은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FT는 이밖에 사설을 통해서는 한국의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외로부터 기술과 경영기법, 투자를 유치할 필요가 있고 수출도 중국에 잠식당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금융 허브가 성장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정부가 '경제 국수주의'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이는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최근의 금융규제 강화를 '경제 국수주의'의 산물로 규정, 맹성토하고 나선 것이다.
  
재경부, FT보도 조목조목 반박
  
FT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뉴욕과 런던 등 세계금융시장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제신문매체로, FT의 이번 '한국 두들기기'는 한국에 들어와있는 소버린, 뉴브리지캐피탈, 칼라일, 론스타 등 거대 외국금융자본의 최근 불만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재경부는 이에 이번 사태를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 재경부와 금감원이 공동명의로 FT에 반론문을 게재를 요구하기로 하는 동시에 31일 오후 해명보도자료를 통해 FT보도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다.
  
재경부는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 금번 5% 룰의 제도개선은 외국 투자자 규제 목적으로 급히 도입된 제도가 아니라, 경영지배권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1년간의 걸친 연구용역과 국회에서의 심도깊은 논의를 거쳐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라며 "지난 1월17일 법 공포후 금감원이 모든 투자자들(외국인 포함)에게 개정내용을 개별적으로 공지하였다"고 밝혔다. 재경부는 아울러 "5%룰은 투자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제도로서 외국 투자자 규제목적의 제도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재경부는 또 "새로운 제도는 현재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의 5%룰(SEC regulation 13d)을 참고하여 동일한 내용으로 도입한 것으로 외국인 투자자들도 그 내용을 잘 숙지하고 있다"며 "경영권에의 영향이라는 용어의 개념도 증권거래법 시행령에서 그 내용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FT 보도는 한국내 외국금융자본의 목소리 대변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반박에 나서면서도 내심 FT 보도가 가뜩이나 최근 두드러진 신흥시장으로부터의 자금이탈을 가속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재경부와 한은 등에 따르면, 이달 중순부터 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 한국 등 신흥시장의 가산금리(스프레드)가 급등하는 등 국제자금의 미국으로의 이탈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근 우리나라의 가산금리도 급등하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멕시코, 브라질, 콜럼비아 등의 가산금리는 한층 가파른 급등세를 보이고 있으며 동남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신흥시장 대신 고금리의 미국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재경부는 또 FT 보도 이전에도 외국계의 불만이 적잖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한덕수 신임 경제부총리가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오던 제일, 외환은행 등 외국계 은행의 외국인 이사숫자 제한 방침을 백지화한 것도 이같은 외국계 흐름을 감지했기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계는 최근 금감원이 외국계 탈세, 국내자본 유출 등을 조사하는 것 등을 계기로 "참여정부 일각에서 외국계 규제 움직임이 뚜렷히 목격되고 있다"며 강한 의구심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재경부의 강력 해명에도 불구하고 FT류의 보도가 계속 나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금융시장의 한 고위관계자는 "IMF사태후 한국에 들어와 무소불위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던 해외금융자본들이 최근 한국여론의 비판여론이 이는 데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며 "외국 유명언론을 이용한 이들의 언론플레이에도 불구하고 '정상적 금융 활동은 보장하되 투기-탈세적 행태는 엄격히 대응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프레시안 / 박태견 기자 2005-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