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역사전쟁, 잃어버린 10년

독도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지난해 중국이 엄청난 국가재정을 들여 ‘동북공정’을 추진한다고 할 때도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한국은 과거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때도 국민들의 반 중국감정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해 중국의 ‘동북공정’ 때는 정부의 대응이 좀 미지근했지만 이번 독도사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에 허둥 댄 세월

꼭 12년 전 1993년의 일이다. 그해 8월 중국 지린(吉林)성 압록강변의 옛 고구려 수도인 지안(集安)에서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등 6개국 학자들이 참가한 고구려문화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날 발표된 11편의 논문 가운데, 중국측 한 학자의 ‘호태왕비(好太王碑,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중국학자들의 연구’ 발표에 이은 토론에서 중국 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에 나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구려는 중국 동북에 있었던 한 소수 민족의 지방정부로서 그 역사와 문화는 중국의 일부’라는 것이다. 83세의 북한 원로 사학자 박시형 교수가 “과거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로, 현재의 역사는 현재의 사실로 보아야 한다. 고구려를 한(漢)의 소수민족 하나로 보는 견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사서(史書)에서도 이런 기록은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중국측 쑨진지(孫進己)라는 교수가 벌떡 일어났다. “최근 산둥성에서 발굴된 유물에서도 고구려는 당시 중국의 한 지방정부였음이 밝혀지고 있다”면서 고함을 질렀다. 창춘시에 있는 지린성 박물관에 들렀을 때도 안내 연구원의 설명은 같은 맥락이었다. 그의 첫마디는 “고구려나 발해는 중국 동북지방의 한 소수민족 정부로서…”로 시작되고 있었다. 중국의 역사학자들이나 정부의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대한 태도는 그 존재를 아예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불손과 오만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회의에서 돌아와 국내 신문에 그것도 사정사정해서 기고를 했다. 나는 당시 글에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우리가 중국과의 수교에만 허겁지겁했지 정작 중국을 제대로 알려고 하는 노력이 너무도 부족했고, 또 고구려 문화유적의 발굴·보존·연구를 정부 차원에서 서둘러 추진하지 않으면 우리의 고대사가 자칫 실종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지난해 ‘동북공정’ 사건이 터졌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날 때까지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우리는 그때 얼마나 허둥댔는가. 학계와 정부, 그리고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모아져 ‘고구려재단’을 설립,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대응해나가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올해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4천달러, 2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선진국보다도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역사를 선반 위의 장식물쯤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사가 교육과정이나 국가시험에서 푸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오래 되었다.

민관학 이젠 힘모아야

중국의 고구려사 ‘무시’ 전략은 동북공정 훨씬 이전부터 출발했다.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가 그들의 오랜 목표에 따라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역사개편작업에 나선 것일 뿐이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역사적, 외교적 작업도 집요하고 끈질기기는 중국에 못지 않는다. 다만 이번의 경우 전술·전략면에서 중국보다 좀 덜 세련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일본·중국과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다. 올해는 마침 광복 60년이다. 역사인식과 교육, 그리고 일본·중국에 대한 대응 등에서 우리 정부가 종전과는 다른 적극적이고 또 긴 호흡으로 가겠다는 조직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고등학교 교과목에 국사를 필수로 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니 고무적이다. 지켜볼 일이다.

(경향신문 / 김민남 객원논설위원 2005-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