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盧정권의 외교좌표 변경 불안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의 실체는 한국이 한 ·미·일 남방 삼각공조라는 전통적인 외교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겠다는 의미인 것으로 명확히 밝혀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전개 되고 있는 일본과 중국간의 세력다툼에서 한국이 미국의 후원을 받아온 일본을 두둔하는 이른바 ‘관성적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30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 “대륙봉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 것은 한국의 외교 좌표가 현재 한·미·일 삼각공조체제로부터 중국중시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시사하기에 충분하다.

결국 건국이후 반세기가 넘게 유지해온 전통적인 대미·대일중시 의 ‘해양지향 외교’에서 탈피해 중국 중시의 ‘대륙지향 외교 ’로 옮겨나가겠다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 고위관계자는 배경 설명으로 “한·미·일 남방 3각 대(對) 북·중·러 북방 3각으로 짜여진 냉전시기의 진영(陣營)외교에서 벗어나겠다”고 했다. 이것은 한국외교의 좌표에 대한 근본적인 변경, 곧 수정을 의 미한다. 문제는 한국외교가 대미·대일 중시외교에서 벗어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을 과연 갖추고 있으며, 또한 한국이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국제정치학적 환경이 갖춰져 있느냐 하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의 경제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국군이 자위적 국방역량을 갖추게 되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대륙지향의 외교를 펼치는 것은 국가역량에 대한 자만인 듯하다. 우선 중국부터 한국이 미·일과 멀어지면서 밀착해 들어오는 상황을 반기지 않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초미의 관심사 인 중국이 미국의 비위를 거슬러가면서까지 한국을 끌어안을 것 인가. 러시아도 미국의 정책노선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도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한국은 안중에도 없다. 대륙에 대한 일방적인 연민이요, 그야말로 ‘짝사랑’일 수 밖에 없다.

미국도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한·미관계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해서 수사 이상으로 받아들일 리 없다. 당장 6자회담에서 미 ·일이 한편이 되고, 나머지 남북한·중·러가 또 다른 편이 되는 상황을 우려할지도 모른다. 일본이 문부상의 독도관련 망언에 이어 외상까지 나서서 노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한 데 대해 “왜 지난해 12월 정상회담 때는 말하지 않다가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느냐”는 비외교적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 왜 북방 3국도 멀어지고, 미·일도 멀어지는 ‘외톨이 외교’를 자초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불안해보일 뿐이다.

(문화일보 2005-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