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韓美동맹 없으면 사상누각 EU같은 집단안보가 목표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 / 전문가 긴급대담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을 계기로 급변하는 동북아의 새 역학 구도에서 한국 외교의 좌표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미 동맹의 지속 여부나 한ㆍ미ㆍ일 3각공조 문제, 나아가 중국과 일본 간의 경쟁구도 등이 새롭게 불거지고 있다.

매일경제는 조경엽 정치부장의 사회로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와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의 긴급 대담을 통해 격랑에 놓인 동북아에서 한국 외교의 좌표에 대해 짚어봤다.

-100년 전 동북아 상황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하영선 서울대 교수=우리가 19세기에 망한 것은 자강균세(自强均勢)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강균세에 성공해 독도만 가져간 게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가져갔다. 우리도 자강균세를 몰랐던 건 아니다. 일본의 방식과 우리의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자강의 '강'자에 대해 19세기 의미로 투철하지 못했다.

문정인 동북아시대 위원장=모든 것은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다. 한국이 통일한국이든, 분단한국이든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새로운 예지가 필요하고 근대적인 힘과 탈근대적인 힘을 창출해야 한다. 그런 사명이 있다. 19세기 말처럼 균세를 못해서 파탄되는 운명을 다시는 겪지 말자는 것이다.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의 진정한 의미는.

하 교수=우선 밖에서 보면 헷갈린다. 정권을 넘어서서 한반도의 21세기나 100년 대계와 연계해서 신중히 생각하자. 한국 내지 한반도가 21세기에 어디로 가야 될지를 정하는 대외전략 개념 설정에 19세기나 20세기의 언어가 쓰이고 있다. 21세기에 걸맞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안에서 좀더 정리해야 한다. 균형자론은 좀더 고민해서 다른 형태로 재구성해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전략 개념으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쪽 설명을 들어보니 근대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동북아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거쳐 21세기 한반도가 나아갈 고민으로 균형자가 적절한 것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수사적인 차원에서 전략 개념으로 가려면 언어와 논리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노무현 대통령의 생각도 다를 바 없다. 균형자라는 표현은 세력 판도가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다. 노 대통령의 균형자는 어떻게 하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밸런스를 유지하느냐다. 19세기 유럽에서의 세력 균형과 여러 차이점이 있는데 오해하고 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 일본과의 관계에 우리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ㆍ중ㆍ일 3국은 공동운명체로 잘되면 같이 잘된다. 일본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균형자 역할을 말한 것이다.

-한국외교가 미국과 중국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문 위원장=일본 내에서 미국과의 밀착에 대한 비판이 있다. 러시아 한국 중국 과의 관계가 나빠져 외압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보통국가로 만들려는 작업을 하기 위해 미국에 올인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일본 국민에게 과거 역사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 없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라고 메시지를 보냈 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미국은 자유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어젠더를 제시했다.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은 미국에 올인을 하지 못한다. 자유의 확산이 북한의 고립과 봉쇄 등으로 이어지면 우리가 수용하기 어렵다. 그런 위협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고민이다.

-일본의 대외정책과 우리 대응은.

하 교수=2월 19일 가진 미국과 일본의 국방ㆍ외교장관 '2+2' 회담 공동선언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국가연합 수준이다. 지구적 전략 목적과 지역적 전략에 합의하고 역할도 분담했다. 21세기 자매결연의 재선언이다.

독도 문제 등에 대해 저쪽을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외교적으로 압박을 해도 절대로 일본이 안 움직인다. 역사의 정의가 우리 편에 선다는 보장이 없다.

중국은 스스로 뜨고 있지만 균형자 역할을 할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올인하는 것은 소강사회 건설이다. 우리도 목적을 설정하려면 선택적으로 해야 한다. 수사적으로 균형자를 설정하면 안 된다.

문 위원장=독도 과거사 등은 일본이 스스로 반성하기 전에는 해결하기 어렵다 . 일본 국민 스스로 양심에 의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동북아 평화 번영을 가져와 상생과 공생의 협력 관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 반성을 통해야 한다.

일본의 양심세력과 연대해 대응해야 한다. 참여정부는 갈등 국면을 최소화하고 협력국면을 최대화하자는 것이다.

-한미동맹에 이견은 없나.

문 위원장=이견이 있다. 우선 위협에 대한 인식 차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은 직접적인 적이고, 중국은 잠재적인 적이다. 우리는 중국을 협력 대상으로 보고 북한도 교류 평화 공존의 상대로 본다. 미국은 다르게 생각한다. 일본도 부분적으로 다르게 생각한다.

두번째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다. 우리는 주한미군 동원에는 응할 수 있으나 한미 연합 전력의 동원은 원치 않는다. 한국군은 대북 억제에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성격상 지역동맹이나 중국 포위는 맞지 않다. 한미동맹은 목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한국 외교의 방향은.

문 위원장=한미동맹의 축이 없으면 사상누각이 된다. 한미동맹이 없는 한국에 대해 중국 일본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우리는 협력적 자주국방으로 자강을 높여야 한다. 그 다음에 균세 역할을 해야 한다. 판을 바꾸지 않겠지만 19세기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유럽에서의 나토 와 같은 집단 방위체제에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체제를 병행해 집단 안보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매일경제 / 윤경호, 윤상환 기자 2005-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