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2차 태평양전쟁`

1941년 12월7일 오전 7시55분. 진주만 상공을 뒤덮은 일본군 전투기들. 무방비 상태에서 폭탄세례를 받고 화염에 휩싸인 미군전함들. 지상낙원 하와이의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 생지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두차례에 걸친 ‘세기의 대기습’으로 미군 2403명이 전사하고 1178명이 부상했다. 3년8개월간 동아시아 전역을 전란의 불길속에 몰아넣은 태평양전쟁은 이렇게 발발했다.

당시 당번함 애리조나호는 두동강이 난 채 침몰하면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1177명의 장병들이 수장된 바로 그 자리 수면 위에 전몰 추념관(USS 애리조나 메모리얼)이 건립돼 있다. 이곳엔 연중 일본인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경건한 표정으로 미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장면을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 이들의 추모가 진심이라면 일본의 ‘대동아전쟁’ 합리화, 나아가 미화 시도는 또 뭔가. 일본이 대미 선제공격에 백배 사죄하면서도 한국 식민지배와 중국 침략은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는 식으로 강변하는 건 특유의 이중처신이다. 강자 앞에선 고분고분하다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상대를 만나면 고압적 자세로 돌변하는 것보다 꼴불견은 없다.

‘진주만을 기억하라(Remember the Pearl Harbour)’. 미국인들이 국가적 위기상황 때 즐겨 인용하던 경구다. 하지만 요즘 미· 일동맹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이 경구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일본은 거의 모든 국제 현안에서 선진국 중 가장 확실히 미국 편을 들었고, 미국은 일본의 숙원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양국은 중국의 새로운 패권국가 부상을 봉쇄해야 한다는 공통의 안보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지금 정부는 미·일 신밀월시대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가. 혹시 일본이 밉다고 미국과 소원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와 미·일의 남방 3각동맹 탈피를 시사한 것은 이런 의구심을 짙게 만든다. 한번 냉정히 생각해보자. 한국이 노 대통령 장담대로 중국·러시아·북한 등 북방 3개국 과 미·일 동맹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감당할 현실적 힘이 있는가. 어느쪽도 자기편에 끼워주지 않으면 균형자는커녕 국제 미아 신세가 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도발은 예전보다 훨씬 노골적이다. 일본은 미국이 뒤를 받쳐주지 않는 한국은 전혀 겁내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이 실질적인 대일 반격수단이 없다는 걸 꿰뚫어보고 있다.

일본은 한국 주력 수출품의 원천기술과 부품선을 상당부분 장악하고 있다. 내심 한국 경제는 자신의 손바닥위에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 일본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다.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미 동맹을 더 굳건히 해야 할텐데 정부는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기우는 듯하다.

미국과 멀어지는 만큼 중국과 가까워지면 된다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인접국 중국의 위협은 태평양 건너 미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지만 정치적 측면에선 엄연히 공산당 1당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다. 이념적·전통적으로 남한보다 북한과 더 밀접한 관계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한반도 시나리오가 바로 남한 주도의 통일이다.

친미성향에다 자기보다 더 잘 살고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통일한국과 국경을 맞대는 일은 어떻게든 피하려 할 것이다. 중국이 이에 맞불카드로 꺼내든 게 바로 고구려가 자신의 지방정권이었다고 우기는 동북공정이다. 한반도 유사시에 옛 고구려 땅인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 본질을 직시한다면 감상적 친중(親中) 반미(反美)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태평양전쟁’의 전운이 감돈다. 북한의 핵무장이나 곳곳의 영토분규는 지역 안정을 일거에 깨뜨릴 수 있는 대표적 발화 요인들이다. 저변에 흐르는 각국의 국수주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 한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준비가 돼 있는가.

(문화일보 / 조용 논설위원 2005-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