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 韓-日‘조용한 외교’의 한계

역사상 숙명적 앙숙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민족과 국가는 적잖이 존재해 왔다. 아랍권의 반(反)시온주의가 그러하며 인도와 파키스탄, 터키와 쿠르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역사와 함께 ‘숙성’되어 온 증오의 관계를 국제사회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 또한 일본과 함께 세대를 뛰어넘는 ‘미움’의 역사를 써 가고 있으며 그 시계는 미래를 향해 가기보다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지정학적 ‘저주’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한반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의 힘겨루기에서 줄곧 희생의 제물이 되어 왔다. 한민족은 930차례가 넘게 중원과 이역 왕조들의 침입을 겪어야 했고 가까이는 6·25전쟁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용군)과의 피 튀기는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1953년에 끝난 중공군과의 혈투는 뇌리에서 희석된 지 오래지만 그보다 앞서 1945년에 종료된 일제 식민통치의 앙금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다. 무엇이 이 차이를 설명해 주는가.

거꾸로 가는 양국 역사시계

한국과 일본 둘 다 국내외적 이유로 민족주의 교육을 재생산해 왔다고 보면 이는 양자 사이의 인식에 있어 변수이기보다는 상수에 가깝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국이 일본을 침탈한 적이 없었음을 감안할 경우 피해를 준 측으로서의 일본이 결여하고 있는 ‘관용’과 ‘진솔’은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부분의 나라에는 한번도 어려운 ‘강대국화’를 20세기 초반과 후반에 걸쳐 두 번이나 이룰 수 있었던 일본의 능력을 고려한다면 이는 상당 부분 ‘일본의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어쩌면 이는 일본의 ‘강대국화’가 한 번은 영일동맹을 업고 또 한 번은 미일동맹을 업고 이루어진 탓인지도 모른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했던(脫亞入歐)’ 일본이 스스로 자신할 만한 ‘연성국력(soft power)’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처럼 겸허한 사죄도, 또 지역적 리더십에 대한 진솔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는 않을까.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는 것 그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과연 ‘어떠한 정상국가’가 될 것인지에 좀 더 큰 우려를 갖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함을 강조해 왔지만 과연 이에 상응하는 진솔한 입장 개진이 일본 측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있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역사왜곡 교과서, 독도 영유권 등의 문제들이 던진 적 없는 부메랑처럼 날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만 일본과의 ‘새로운 만남’을 주창하는 어리석음을 그만둘 때가 아닌지 숙고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고민은 설득력이 있다.

최소한 대일(對日) 관계에 있어서는 ‘조용한 외교’가 갖는 한계효용이 급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체적으로 검토할 시점이 되었다. 해군력의 명시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만을 되뇔 것이 아니라 좀 더 강화된 대외 홍보, 적극적인 근거의 확보, 그리고 영토 주권의 자주적인 방어력 확충에 국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독도 영유권은 한일관계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외교통상부 장관의 논평이 실제 미시적으로도 운용의 원칙이 됐으면 좋겠다. 거금을 들인 또 다른 연구재단을 만들어 학계에 모든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정부의 발상 전환과 적극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대해 본다.

독도주권 힘으로 뒷받침돼야

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를 통해 한일관계를 들여다보다 문득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지난해 만들어진 고구려재단과 고구려사 왜곡 시정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기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가. 근원적인 해결보다는 ‘동면’ 상태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 문제가 다시 터질 때 사용할 대비책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안이 불거졌을 때만 지글지글 달아오른 후 금방 식어 버리는 양은 냄비 방식의 대응을 넘어서야만 우리의 ‘국격(國格)’을 제대로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동아일보 2005-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