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인이 길러야 할 전략적 사고

지난 2년간 북핵,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세 가지 파고가 우리를 흔들고 지나갔다.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동북공정),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일본의 독도 문제 제기, 미.일동맹의 강화와 중.러의 서해상 연합훈련 등 네 가지 문제가 우리에게 닥쳐왔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대한 대응을 잘하려면 이런 문제들을 미리 예견하고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 국민은 사안에 따라 높은 감정적 대응을 보이고 있다.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대응은 임기응변보다는 사려 깊고 계산된 대응이 필요하다.

이웃 일본을 보자. 지금 나타나는 미.일동맹의 세계화는 일본이 1993년부터 12년 동안 공을 들인 결과다. 일본은 미국의 리더그룹들과 탈냉전 후의 세계에서 공동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성에 관해 함께 연구를 계속해 왔다. 80년대에는 미국이 대일본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반덤핑법으로 제동을 걸었을 때, 정부 대 정부 간 무역협상에 매달리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미국의 연구소에 일본 경제에 대한 연구지원을 함으로써 미국 내에 일본경제 전문가그룹을 두껍게 형성했다. 이들이 미국 법정에서 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싸워 승소, 일본의 미국 시장 진출을 합법적으로 만들었다. 클린턴 행정부 때엔 공화당 그룹 인사들과 공동 연구를 통해 미.일동맹 강화 방안을 연구했다.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지금 네오콘이 일본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즉 일본은 어떤 외교안보정책을 발표할 때 그 준비기간이 매우 길며 신중한 전략적 행동을 한다.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은 일단 미국과 일본에 필적할 만한 국력을 기를 때까지 이들과 직접 부딪치기를 피하면서 지그시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웃 국가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항에 대해 반드시 지적은 하지만 큰소리를 치지는 않는다. 중국의 국력이 한국을 능가하자마자 동북공정론을 들고 나온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아직도 미.일에 대해서는 대만 문제 이외에는 전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국이 안보 문제에 대한 심각한 사고가 부족한 것은 두 가지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탈냉전 이후 러시아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를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일환으로 2001년에 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의 보존.강화에 찬성해 주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관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러시아로부터 어떤 반대급부를 얻을지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찬성해 주고 말았다.

우리가 전역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한 거부결정을 했을 때 중국으로부터 어떤 반대급부도 요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전역미사일방어체제는 중국이 계속 반대해 오던 터라 우리가 거부결정을 내리면 중국은 반사이익을 얻게 돼 있었다. 우리는 이 상황을 국익 확보를 위해 활용하지 않았다.

4강으로 둘러싸인 한국이 생존과 번영을 누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과 중국보다 더 사려 깊은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일동맹의 강화가 가져올 문제, 일본이 독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 중.러의 군사관계 강화, 북핵 보유 선언 등은 미리 예견되던 문제다. 철저한 대비를 했어야만 옳았다.

12년 전 필자는 21세기 급변하는 안보환경에서 한국의 안보.번영을 위해서는 적어도 4강에 대한 전문가 100명씩은 키워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었다. 현재 우리는 북한에 대한 군사정보 수집능력도 완전하지 못하다. 하물며 미.일.중.러의 군사와 전략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능력으로 어떻게 격동의 동북아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가. 지금부터라도 우리 기업과 정부는 주변 4강에 대한 군사와 전략전문가 육성에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한용섭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

(중앙일보 2005-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