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추출'로 점철된 '세계의 역사교과서

"아는 만큼 보인다." 문화재청장인 미술사학자 유홍준 씨가 한국 문화유산을 선전하기 위해 널리 유통시킨 말이다.

이를 소위 국사(國史)에 대입해 보자. 우리가 일선 교육현장 등을 통해 흡수한 역사란 '그림'은 혹시 '선택'되고 '추출'한 결과물이 아닌가? 알고 싶은 것만 알고자 했던 것은 아닌까?

일제 식민지배를 잔혹하게 만들기 위해 잔혹한 장면만 뽑아 놓은 것이 우리에게 각인된 역사의 전부는 아닐까? 그 잔혹함에 맞서는 모든 투쟁은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는 전제를 증명하기 위해 혹시 우리가 구축한 국사는 정작 이 땅 조선에 살고 있던 1천만 혹은 2천만 동포를 내쳐버리지는 않았는가?

어떤 한국사를 읽어도 정작 이 땅 조선에서 살았던 수천 만 동포들의 이야기는 없다.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리는 늘 총칼을 높이 쳐든 일제 순사나 태극기를 휘날리는 유관순, 아니면 백범 김구가 한복판을 차지한 상하이 임시정부 수뇌부 사진이 차지했다.

우리의 할머니-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포악한 일제는 늘상 그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윽박질렀고 총칼로 위협하며, 때로는 위안부로, 때로는 군수공장으로, 또 때로는 탄광으로 끌고 갔다고만 한다.

그렇다고 이런 모든 장면이 거짓말일까? 물론 과장이나 허위 정보가 섞여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나 대부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일본우익의 '새역사교과서' 출범을 계기로 일본 역사학자들이 세계 11개국 역사교과서를 비교한 성과물로 '세계의 역사교과서'(작가정신)라는 단행본이 있다.

근현대사에서 따로 떼어내기 힘든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외에 2차 세계대전에서 가해-피해국 관계인 독일과 폴란드, 삼국동맹과 맞선 연합국들인 미국과 영국과 네덜란드 교과서를 분석해 내린 결론은 이렇다.

"각국이 같은 역사를 두고 각기 다르게 인식하거나 기술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날조'라기보다 '선택' 또는 '추출'의 기술방식 때문이다. 즉,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만든다'기보다는 사실을 전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국에 이롭지 않은 정보를 삭제하고 묵살하는 현상은 일본 우익교과서뿐 아니라 세계 역사교과서에 거의 공통된다.

한국역사교과서의 분석을 보자. 아니나 다를까, 유별난 민족주의 사관이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문화에 대해서는 자율적 수용론을 강조하면서도 일본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위에서 내려다 보는 일방적 시혜론을 견지한다.

1970년대 이기백 교수는 "우리는 일본에 주기만 했지 그들에게서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극단적 자민족 중심주의를 제창하기도 했다.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면서 타민족과의 공존을 무시하고, 그 사람들의 존재를 무시한 채 역사를 바라본다. 이것이 우리 국사의 현실이다.

솔직해지자. 우리가 중국과 일본을 향해 역사를 왜곡한다고 질타하지만, 정부에서 편찬한 국사 교과서는 물론이고 최근 대안 교과서나 검인정 교과서를 보면, 도대체 누가 누구를 비판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특히 대안교과서나 검인정 교과서는 거의 예외없이 첫 문장이 민족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문장 또한 민족으로 끝난다. 700년 가량이나 딴집살림을 했던 고구려, 백제, 신라도 한 민족이라고 강변하며, 전근대 신민(臣民)을 곳곳에서 국민(國民)으로 오독하기까지 한다.

냉철하게 우리를 돌아볼 때다. 양억관 옮김. 361쪽. 1만3천원.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