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서해에서 사상 첫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

미-일 동맹 견제, 북핵 대비 등 다목적 전략

중국과 러시아가 서해에서 사상 최초로 대규모 합동 훈련을 실시키로 합의,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국제질서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의 자매지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23일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오는 9~10월께 합동 군사훈련을 중국 랴오둥(遼東) 반도와 인근 서해 해역에서 실시키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17~20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유리 발루예프스키 러시아군 총참모장과 량광례(梁光烈)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회담을 갖고 이 같은 합동훈련 계획에 최종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번 훈련에는 양국의 육-해-공 3군과 공수부대 및 해병대가 모두 참가한다. 러시아는 제76 공중강습사단. 해병대 소속 특수부대, 전략 항공부대 소속 TU-160와 TU-95MC 및 TU-22M3 등 장거리 전략폭격기, 공군 소속 SU-27SM 전폭기, 블라디보스토크 함대 소속 군함과 잠수함 10여 척을 동원할 계획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훈련을 9~10월에 실시키로 하고 각 병과가 참여한 심층적 훈련이 되도록 한다는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훈련은 양국 모두 육해공 3군으로 조성된 합동군이 참가하는 다병종-입체화 군사훈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의 〈밍바오〉(明報)도 24일 훈련 지역이 미군의 주한기지와 주일기지와 가까운 지역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잠수함과 잠수함 정찰기의 활동이 빈번한 서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중-러 양국은 이번 군사 훈련이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으나 훈련 지역 등을 볼 때 이 같은 주장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어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부장관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올 가을 중국과 실시할 훈련계획에 관해 보고했다면서 이번 군사훈련은 중국과 러시아간의 정치적 상호신뢰를 확인시켜 줄 것이라고 밝히고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국제 테러리즘의 위협과 도전에 대비해 상하이 협력기구(SCO)의 틀 내에서 군대 동원 메커니즘을 구축하려는 데 훈련의 목표를 두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훈련지역을 볼 때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을 견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훈련의 규모를 보면 양국의 주장하는 테러에 대비한 연합훈련의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훈련기간도 1주일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언론들은 이번 훈련은 종합 군사훈련이 될 것이며 의미 있는 군사 협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이번 훈련을 통해 한반도 유사시 미과 일본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목적이 있는 듯하다.

특히 러시아는 TU-95MS 전폭기가 해상 목표에 크루즈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며 SU-27SM 전폭기가 지상군의 지원 훈련도 실시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또 IL-76수송기로 낙하산부대를, 태평양 함대의 상륙정을 통해 해병대를 각각 동원할 계획이다. 양국의 이번 훈련을 계기로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 구도에 큰 변화가 일 가능성이 높다. 홍콩 〈봉황〉(鳳凰)TV는 미군의 주일, 주한 기지가 인접해 있는 서해 지역에서의 양국 훈련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러 양국은 지난해 합동군사 훈련을 하기로 합의한 후 그동안 훈련지역을 놓고 이견을 보여왔다. 중국은 처음에 러시아 극동지역을 제의했으나, 러시아는 테러세력이 많은 중앙아시아 인근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를 제안했다. 중국이 대만과 가까운 저장(浙江)성을 수정 제안했지만 또다시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이번에 랴오둥과 서해 지역을 훈련 지역으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중-러 양국은 이번 훈련을 통해 서로의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미국의 포위전략에 맞서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서해에서 대규모 훈련을 실시해 힘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경우, 과거 동해 상에서 실시해왔던 훈련 장소를 서해로 이동함으로써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유사시 대한해협을 통해 대규모 함정과 잠수함이 이동할 수 있는 훈련까지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자국의 뒷마당인 중앙아시아에 진출하려는 미국에 간접 경고한다는 측면도 고려했을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9.11 테러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중앙아시아에 군사기지를 설치, 러시아를 자극해왔다. 때문에 양국은 미-일 군사동맹을 견제한다는 공동의 이해타산으로 이번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한반도를 놓고 중국-러시아와 미국-일본의 대결 구도가 이번 훈련 실시로 입증된 셈이다.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업코리아 2005-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