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 “결국 한반도는 영세중립으로 가야 한다”

“현재의 6자회담은 북핵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6자회담의 합의점은 수학의 6차방정식과 같이 공간상 6개의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나게 함으로서 찾을 수 있다. 그 한 점을 찾기 위해선 6개국의 신뢰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신뢰구축은 각 국이 내세우는 이해관계 속에서 쌓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아래 가능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평화’라는 사상적인 가치가 갖는 힘을 믿고 헌법을 통해 중립화를 선언해야 한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여부를 둘러싼 국제적 관심이 높은 가운데 수학계 석학이자 문명비평가인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23일 오후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영세중립통일협의회 학술회의에서 “현재 북핵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6자회담은 한반도의 ‘비핵’, ‘영세중립’, ‘동북아 공동체 형성’ 등을 위하는 것으로 격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침 많을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

김 교수는 한반도가 겪어 온 역사에서 평화의 가치를 중심에 둔 영세중립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점철된 한반도의 역사의 우선적 요인으로 지정학적 위치를 꼽는다.

김 교수는 “백제가 A.D 663년 백강 전투에서 대패하자 백제인들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가 왜인과 합세해 일본을 건설했다”며 “웅진(熊津)에 있는 조상의 묘를 찾아갈 수 없는 아픔을 ‘일본서기’에서 찾아볼 수 있듯, 도래인의 옛 땅에 대한 집착이 집단 무의식 돼 작동하면서 임지왜란·조선통신사 폐지·조선 식민지화 등 한일 갈등이 야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논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문제도 잃어버린 옛 땅을 찾고자 하는 백제인(일본인)들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이사도 지난 18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잃어버린 옛 땅에 대한 저주”라고 말한 바 있다.

김 교수는 현재 패권화로 치닫고 있는 중국의 거대화 역시 이 같은 맥락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중국의 역대정권은 한사군 이래 수, 당, 송, 원, 명, 청 등 모두 한반도에 관여해 왔다”며 “그렇기에 6·25 당시 중공 수립 선포 1년 만에 해군력·공군력도 없이 600만 대군을 파견, 40만의 희생을 무릅쓰고 인해전술을 펼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오랜 역사동안 소위 ‘속국’으로 생각해온 한반도에 대해 미국이 관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관념이 이런 상황에서 반대로 우리 민족은 고구려 등 과거 역사 속에서 우리 땅으로 인식해 온 북방 고토(故土)에 대한 무의식적인 그리움으로 피를 끓여왔다는 것이 김 교수의 해석이다. 김 교수는 “소위 속국처럼 여긴 한국이 고구려를 외치며 북방 고토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니 중국이 고구려사 문제 등과 같은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근대 과학기술이 시베리아 철도, 파나마 운하 등을 마련하자 러시아와 미국이 한반도에 관여하게 됐다”며 “이런 상황 조건 아래 기독교를 신봉하는 백인의 명백한 사명(manifest mission) 의식은 미국의 서진(西進), 러시아의 동진(東進)으로 표출돼 한반도가 자연히 충돌점으로 대두됐고, 그 결과는 38선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6자회담 원융회통(圓融會通) 철학 담아야

김 교수는 “이 같은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이 주변국과의 충돌과 갈등을 야기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선 공간상 6개의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나게 하는 수학의 6차방정식의 원리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구체적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6자회담을 거론하며 “한반도를 둘러싼 각 국의 수많은 이해관계를 하나의 점으로 만들기 위해선 결국 상식적이며 보편적인 ‘평화’라는 가치를 앞세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보화 시대가 하나의 세상을 형성하면서 원효대사의 ‘원융회통(圓融會通: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면서도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는 이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김구의 문화대국론 등의 가치가 현실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의 가치를 앞세운 집단적 안전보장의 틀 속에서 주변국 모두의 이익 보장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한반도 영세중립을 헌법에 명시해 ‘비핵’, ‘영세중립’, ‘동북아 공동체 형성’ 등을 가능케 하는 6자회담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현재 미국이 무조건적으로 북의 체제 붕괴를 주장하는 방식은 문제 해결에 도움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김 교수는 “과거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진주만을 습격하게 된 계기는 미국, 영국, 중국, 독일이 일본에 대한 석유수출을 금지했기 때문”이라며 “북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 역시 미국의 강한 대북압박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북을 압박한다면 그들은 수십만을 굶겨 만든 군사시설을 언젠간 써먹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면서 천황제 존폐 문제를 일본인의 뜻에 따르도록 한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북의 비핵을 유도하면서 김정일 체제까지 붕괴하려 하지 말고 체제의 문제는 북측 사람들의 뜻에 맡겨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날 회의에 토론자로 나선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북핵 문제와 한반도 영세중립 문제는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며 “한반도의 영국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선 외국 군대(미군)의 완전 철수, 영세중립화, 일본의 비핵화 선언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영세중립국이 되기 위해선 3가지의 주관적, 객관적, 국제적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국가의 국민들이 영세중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하며, 객관적으론 지정학적으로 영세중립국의 대상이 돼야 하고, 국제적으론 주변 국가들이 협정을 통해 영세중립국의 국제적 지위를 승인해야 한다. 현재 영세중립국의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 김세옥 기자 2005-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