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고구려 코드’로 푼 한국미술사

서구 도상학(圖像學)의 비밀을 풀어헤친 소설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 흥행에 성공하는 동안 한국 고고미술사학계에서도 ‘고구려 코드’를 밝혀낸 흥미로운 학설이 등장했다.

‘다빈치 코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열쇠로 서양미술사에 숨겨진 기독교의 비밀을 추적했다면, ‘고구려 코드’는 2000년 전 고구려 고분벽화에 숨겨진 열쇠를 바탕으로 한국 미술사의 도교적 기원을 추적하고 있다.

그 추리의 주인공은 강우방 이화여대 겸임교수. 그는 몇 년 전부터 한국미술사에서 주변적 존재에 불과했던 덩굴무늬 당초무늬 불꽃무늬 구름무늬가 우주의 신령한 기운(영기·靈氣)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물을 구상화해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사신(四神)이나 용(龍) 그림도 이런 영기를 동물화한 것이라는 그의 ‘영기 미학’은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한국미술사 전 분야로 확장되면서 이론의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다.

강 교수는 27일 ‘문화의 전파와 변용’을 주제로 일본 교토(京都)조형예술대에서 열리는 국제학술세미나의 기조강연을 통해 자신의 학설에 대한 국제적 검증을 받는다.

“비밀의 열쇠는 고구려 벽화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국미술의 바탕은 신라에 있다고 믿었는데 실은 고구려에 있었던 거지요. 그 비밀을 깨닫는 데 4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2000년 경주박물관장을 마지막으로 박물관 현장을 떠났으나 그는 신라 불상연구로 일가를 이뤘다는 평을 들을 만큼 신라문화 전문가로 통했다. 회화 서예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그가 고구려 고분벽화를 찬찬히 관찰하다가 새로 발견한 것은 고구려 벽화의 3분의 2를 덮고 있는 각종 장식무늬였다.

“호박덩굴의 끝처럼 돌돌 말리거나 둥글게 순환하는 구조로 이뤄진 추상무늬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식물덩굴무늬나 용이 뒤엉킨 형태로 구상화돼 갑니다. 가장 후대에는 사신도만 남게 되는데 청룡, 백호, 주작, 현무라는 이 4마리 동물의 공통되는 속성, 즉 머리와 꼬리를 축으로 기다랗게 굽이치는 곡선형은 바로 용의 변주로서 영기의 표현입니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의 존재를 추상적 무늬로 표현하다가 덩굴무늬 같은 식물 형태를 부여했고, 다시 사신과 용이라는 동물 형태로 발전시켰다는 것.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눈에 잡히는 구상에만 매달리다 그 추상적 원형을 잊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동서양의 예술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식물 동물 무늬의 사상적 기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미학적 통찰은 세계미술사에서 오직 고구려벽화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수세기에 걸친 미술사적 변화를 밀집된 공간에서 펼쳐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는 이 ‘영기의 미학’을 백제 무령왕의 금관장식, 신라 에밀레종의 비천상, 각종 불상의 광배, 고려·조선 건축의 단청과 공포(공包) 장식에 적용시켜 설명한다.

특히 기둥과 지붕을 연결하는 십자구조물인 공포 중에서 건물 외부로 튀어나온 부분(살미)을 연꽃덩굴이나 용 형태로 장식하는 한국건축만의 특징이 바로 영기의 표현이라는 설명은 감탄을 자아낸다. 한국건축의 살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부처가 몸에서 발산하는 영기 또는 우주에 충만한 영기의 분출을 건축적으로 완성시킨 미술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중국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예술적으로 완성시켰듯이, 한국건축도 동양적 영기의 세계관을 건축적으로 완성했습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불상 조각이 석굴암 불상에서 완성되듯, 한국미술은 외부에서 전파된 사상을 변용해 예술적으로 완성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5-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