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달라진 권력 관리 스타일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 관리 스타일'이 달라지고 있다. 대국민 이미지와 지지도, 여론 관리에 무척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최근 노 대통령은 비서실에 "국민이 즐겁고 기뻐할 이벤트를 많이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 핵심 참모는 전했다.

지난해 초반만 해도 노 대통령은 "나에 대한 지지도 조사를 하지 마라"고까지 했었다. "지지도에 신경 쓰느라 해야 할 일을 못한다" "인기가 떨어지더라도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 아니냐"는 게 당시 노 대통령의 언급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일 정.재계 인사 등 각계 지도층이 모여 손을 맞잡은 투명사회 협약 체결식에 참석한 뒤 청와대로 돌아와 "전례 없던 일"이라며 흐뭇해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당시 행사를 국내 최대 기획사인 C사에 맡겼다.

그 이틀 뒤 대체 에너지 개발 차원의 수소연료 전지 자동차 시연식이 열렸다. "대체에너지 회의보다 상징적인 장면이 더 중요하다"는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차량 시승 때 "사진발이 잘 받아야 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참모들의 경제 현장 방문 건의에 "그런 전시 행사는 안 한다"고 거절하기 일쑤였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노 대통령은 곧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씨도 만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의 권력 관리법은 그간 두 단계를 거쳐왔다. 취임 초부터 지난해 3월 탄핵 전까지 노 대통령은 정권의 도덕적 우위를 무엇보다 내세워 왔다. "우리가 옳은데…"라는 고집은 국정원 수뇌부 임명, 측근 비리 특검 등 사안마다 야당과 극렬하게 부닥쳤고 독선과 오만이라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4.15 총선에서 과반수 여당이 된 뒤에는 국회 의석의 우위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해 9월 "낡은 유물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라"며 국가보안법 폐기를 밀고 나간 게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국회 우위론도 한계에 부닥쳤다.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대통령이 '도덕성과 다수의 의석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며 "결국 국민 다수의 공감대와 설득이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고 전했다. 최근 당정이 '수도 분할' 비판을 받고 있는 각종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국회에서 논의케 하고 결정을 미루는 흐름에는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노 대통령의 변화엔 최근 지지도의 흐름이 40%대(최근 한국일보 조사 41.5%)로 상승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지난 연말 38% 안팎이었던 그의 지지도는 경제 회생의 방법론을 제시한 취임 2주년 국회연설(2월 25일)과 일본에 '배상' 등의 단호한 목소리를 낸 3.1절 기념사를 계기로 각각 2%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청와대 측은 분석하고 있다.

최근 업무보고를 받는 노 대통령이 각 부처에 하는 '릴레이 칭찬'도 주목받고 있다. "완벽한 보고"(4일 정보통신부), "희망과 확신을 갖게 됐다"(4일 과학기술부), "이대로 실천되면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9일 해양수산부), "금융산업 발전에 직원들의 노고가 컸다"(11일 금융감독위) 등 거의 전 부처에 걸쳐 노 대통령은 격려와 상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보고서 제목만 바꿔왔다"고 질타하던 것과는 판이하다.

심지어 이해찬 국무총리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에게까지 "정말 이 총리는 아는 게 많다" "이 위원장은 매일 밤을 새우는 것 같다"고 한다고 한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자신의 철학을 주입해 끌고 가려고 했던 지난해와 달리 행정 조직을 다독이면서 안정적으로 함께 가려는 행보 같다"고 해석했다.

(중앙일보 / 최훈 기자 2005-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