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 출토 남근형 백제목간은 도성신 제사용"

능산리 출토 남근형 백제목간
문 입구 기둥에 설치, 日 도조신(道祖神) 원류

히라카와 미나미 교수, 실물 검토 결과 규명

충남 부여 능산리사지(사적 제434호)에 대한 1999-2000년 조사에서 출토된 6세기 중반 무렵 남근(男根) 모양 백제 목간(木簡)은 도성(都城)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제의용품이었다는 파격적 견해가 제기됐다.

일본 고대 목간 권위자인 히라카와 미나미(平川南. 63)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는 이성시(李成市) 일본 와세다대 교수, 김수태 충남대 교수와 함께 14일 남근형 목간(길이 22.6㎝)을 소장 중인 국립부여박물관(관장 이내옥)에서 이 유물을 관찰한 결과 도교적 전통에서 유래한 도성제(都城祭)에 사용된 기물이라고 말했다.

도성제란 일본 고대 율령(律令)에는 도향제(道饗祭. 미치아에사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제사의 일종으로, 천황(天皇)이 사는 도성(都城)으로 사악한 귀신이나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히라카와 교수는 "도향제에 관한 규정에서 남근(男根)에 대한 기술은 보이지 않는 대신, 곰이나 소, 사슴 등의 짐승 가죽을 쓰고 있다"면서 "(그러나) 9세기 일본 문헌자료에 의하면 노한 신(神)을 잠재우기 위해 논에 물을 대는 입구에다 쇠고기와 함께 남근을 둔다는 언급이 보이고 있는 점은 주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히라카와 교수는 쇠고기나 남근을 제사에 쓰고 있는 것은 도교적 주술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따라서 이번 능산리 출토 남근형 목간 또한 신성해야 할 논에 다른 사악한 기운이 유입되는 것을 막고자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히라카와 교수와 이성시 교수는 이 목간이 첫째, 부여 나성(羅城)의 동문 근처에서 출토됐으며, 둘째, 목간이 남근형이고, 셋째, 무엇보다 이 목간에서 '길가에다가 세운다'를 뜻을 나타내는 '道緣立'(도연립)이라는 문구가 확인된다는 점을 중요한 증거로 들었다.

이 목간은 남근형이라는 형태상의 특이점 외에도 네 면을 다듬어 그 각면에 모두 묵글씨나 새김글씨를 넣었으며, 일부 면에서는 양끝에서 중간을 향해 각각 글자를 써 내려감으로써 결과적으로 글자 방향이 서로 반대되도록 배치하는가 하면, 일부는 칼 같은 도구로 글자를 새기기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묵 글씨를 쓰고 있어 그 용도에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많은 의문점은 다른 무엇보다 이 목간 제1면과 제2면에서 각각 '道緣立立立'(도연립립립)과 '道緣'(道緣)이라는 글자가 확인됨으로써 풀리게 됐다.('道緣立立立'은 종래에는 '道緣立十二'라고 판독했으나 이번 실물 판독 결과 바로잡혔다)

'道緣'(도연)이란 길가라는 뜻이며 '立立立'은 세운다는 뜻을 세 번 강조한 것으로, 이와 같은 형식은 부적과 같은 주문에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다고 히라카와 교수는 말했다.

따라서 이 남근형 목간은 당시 백제왕이 상시 거주하는 도성 입구 시설에 문기둥 같은 곳에 매달아 놓음으로써(즉 '道緣立' 함으로써) 도성 바깥에서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주술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고 히라카와 교수는 덧붙였다.

히라카와 교수는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도성신앙(都城信仰)이 근세 이후에는 마을 입구에서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도조신(道祖神) 신앙으로 계승되고 있다"면서 "현재도 특히 중부에서 관동(關東)에 걸친 산간 지역에서는 성행하고 있으며, 더구나 게 중에는 남근을 상징화한 제물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도조신앙을 일본에서는 조몬시대나 야요이시대에 보이는 석봉(石棒. 돌로 만든 남근)에서 찾았으나, 능산리 목간을 통해 그 원류는 한반도, 특히 백제에 있으며, 여기에서 유래한 도성제(都城祭)에서 발전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시 교수는 "이 목간으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차지하는 백제문자문화의 중요성이 고구려나 신라의 역할에 버금가는 것이었음은 주목되어도 좋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