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한국인 애니메이터 넬슨 심

타임지가 뽑은 20세기의 인물 100선에 든 바트 심슨(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의 등장인물), 전통의 인기 애니메이션 ‘스쿠비 두’와 ‘핑크 팬더’, 영화 ‘스타워즈’의 광선검은 모두 한국인의 손에 의해 그려졌다.

주인공은 황해도 평산 출생의 넬슨 신(67·한국 이름 신능균). 현재 애니메이션 회사 애이콤 프로덕션 회장이자,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애니메이션 전공 교수, 잡지 애니메이툰 편집인 등 명함에 적힌 직책만 7개에 달한다.

# 정강이뼈의 성공시대

넬슨 신의 활약상은 곧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성장사로 읽혀도 무방하다. 신능파라는 필명으로 1960년대부터 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렸다. 조금만 삐딱하게 그려도 “한강에 묻어버리겠다”는 누군가의 협박전화가 날아들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CF 등에서 애니메이션을 그리다가, 이왕 그릴 거 ‘애니메이션 종주국’ 미국에 가자고 마음먹었다. 71년 영어 한마디 못하는 신능균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접시닦이, 페인트 칠을 하며 푼돈을 벌었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애니메이션’ ‘카툰’ ‘스톱 프레임 하우스’ 등의 키워드를 찾아 전화한 뒤 무조건 찾아갔다. ‘넬슨’이라는 미국명도 전화번호부의 N자 항목을 뒤지다가 어감이 좋아 택했다. 미국인들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황색 피부의 애니메이터. 한국에서 만들었던 작품을 필름 상태로 보여주자 반신반의하며 신능균을 받아들였다.

그 뒤 넬슨 신의 성공시대가 시작됐다. 미국인 10명이 1달 동안 일할 것을 넬슨 신 혼자 1주일 만에 그려냈다. 넬슨 신의 능수능란한 솜씨를 본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저마다 ‘정강이뼈’(신을 표기하는 Shin은 정강이뼈라는 뜻)를 찾아댔다. 그렇게 8년을 일하니 어느새 감독이 됐다. PD와 연출로 2,500여편의 애니메이션에 관여했고, 조지 루카스는 4번이나 사람을 보내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다. 79년엔 한국 최초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미국 애니메이션을 한국에서 제작했다.

그는 성공비결을 “열심히 일했다”는 한마디로 설명했다. “부지런한 척하다보니 정말 부지런해졌다”며 “오전 2시 전에 잔 적이 없고, 7시 이후에 일어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요즘도 정 피곤하면 양 손에 턱을 괴고 책상 위에서 잔다. 그러면 팔이 저려서 5분이 안돼 깨어나기 때문이다.

#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의 꿈

넬슨 신은 지난해 북한의 ‘4·26 아동영화촬영소’가 OEM으로 참여한 장편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을 완성했다. 올 7월쯤 남북 동시 개봉될 이 작품은 체코에서 열리는 ‘2005 트레본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진출한 상태.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닌 한국인의 얼굴을 그려냈다. 넬슨 신은 “한국인은 눈두덩이에 살이 쪘고, 눈과 눈썹 사이가 멀다”며 특징을 설명했다.

‘왕후 심청’이 북측에 단순히 하청만 준 형태라면, 곧 제작에 들어갈 ‘고구려’는 명실상부한 최초의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이 될 전망이다. 신화와 설화, 역사가 뒤섞인 39부작 애니메이션으로, 북측은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한다. 분단 이후 남한에선 고구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 것 같아 안타까워하던 차였다. ‘고구려’ 합작을 통해 남북이 문화적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것이다. 넬슨 신은 북한 애니메이션의 수준에 대해 “처음엔 제대로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보면 정교한 솜씨에 깜짝 놀란다”며 “정치적인 견해를 떠나 예술가의 입장에서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글 백승찬기자, 사진 정지윤기자>

(경향신문 2005-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