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 “조선은 중국의 속국…일 도움으로 근대화”

‘자학사관 극복’ 내세워 조선침략 정당화
전쟁책임 중국 러시아에 떠넘겨 ‘선량한 일본’주장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만든 후소사의 2005년도 역사교과서 검정 신청본에 대해 국내 학계는 ‘세련된 개악’이라고 평가한다.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이하 역사교육연대)는 11일, 서중석 교수(성균관대)·안병우 교수(한신대) 등 7명의 역사학자들이 2005년판 새역모 교과서를 공동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역사교육연대는 총괄평가에서 “세련되고 교묘해졌지만, 2001년 교과서보다 더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세련됐다’는 지적은 이 교과서의 형식적인 진전을 지칭하는 것이다. 교과서 판형을 키우고 사진·그림 자료를 크게 보강했다. 채택률을 높이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른바 식민지지배에 대한 반성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하하며 그 극복을 내건 역사서술 내용은 더 ‘개악’됐다.

책 마지막 장에 실린 편집자의 글에는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일본은 최근 반세기 동안 방향을 잃고 지냈다. … 경제부흥을 성취하고 세계 유수의 강대국이 됐지만 패배의 상처를 씻지 못해 자신을 갖지 못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분명하게 가지는 것이다.” 이들이 불러온 일본의 ‘자기 모습’은 한국·중국 등 주변국 관련 역사의 왜곡을 개의치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고대사·전근대사의 왜곡 = 이른바 ‘임나일본부’에 대한 서술을 더욱 강화했다. 동시에 한국 역사의 독자적 기원을 노골적으로 부정했다. 이런 역사관은 현행 새역모 교과서에도 일부 드러났지만, 이번에는 관련 서술을 더 늘리고 강화했다.

우선 고조선·후백제·후고구려 등에 대해선 아예 서술하지 않고,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백제와 신라의 건국 시기를 300년 무렵으로 적는 등 한국사의 기원을 부정하고 개별 왕조성립 시기를 크게 늦춰 서술했다. 또 한사군 가운데 대방군의 위치를 “현재의 서울 근처”라고 서술하고, 낙랑군이 한강 남쪽까지 장악한 것으로 설명했다.

동시에 2001년도 검정신청본에도 없었던 ‘신라의 대두와 임나의 멸망’ 항목을 추가하고, “(한)반도 남부에는 일본의 거점인 임나가 있었다”고 여러 곳에서 주장했다. 지도에 표시된 임나의 영토는 옛 가야 땅은 물론 전라도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것이다. “백제는 야마토 조정에 도움을 요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백제 사자가 일본열도에 잇달아 왔다” 등의 서술을 통해 백제에 대한 야마토 정권의 ‘우위’를 강조했다.

역사교육연대는 “결국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지배, 남부는 일본의 지배 아래서 한국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주장”이라며 “이는 한국병합과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한 식민사관을 다시 노골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사서술의 이런 기조는 조선에 대한 서술에서도 계속 된다. 조선을 설명하는 부분은 오키나와, 홋카이도 등 일본의 변방 지역에 대한 역사서술과 함께 하나의 장으로 묶여 있다. 역사교육연대는 “조선이 마치 오키나와, 홋카이도 등과 함께 일본의 변방영토인 듯한 인상을 심으려는 의도”라고 짚었다. 현행 후소사 교과서가 “(구한말 조선은) 중국의 강한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적은 데서 더 나아가 아예 “중국의 복속국”으로 기술했고, 임진왜란 때 조선이 입은 피해 부분도 아예 삭제했다.

◇ 식민지 근대화론 본격 제기 =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미화하는 서술을 강화했다. 특히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근대화론’의 입장에서 수미일관하게 적고 있다.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칼럼이 새로 추가됐다. 교과서 본문에서도 “일본은 조선 개국 후 조선의 근대화를 원조했다. 조선에서도 시찰단이 오고 명치유신의 성과를 배우려고 했다”고 적었다. “한국 병합 후에 설치한 조선총독부는 철도, 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해 근대화에 노력했다”는 서술도 있다.

애초 2001년 검정신청본과 문부성 검정을 거친 2002년도 교과서에는 조선의 식민지배와 관련해 ‘근대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1876년 개항 이후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친 조선 관련 대목에서 ‘근대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밖에도 창씨개명과 전시동원의 강제성 및 이에 대한 저항을 서술하지 않았다. 현행 교과서에는 “희생이나 고통을 강요했다” “창씨개명을 강제로 하게 했다” “황민화 정책이 강제됐다” 등의 서술이 있었지만, 2005년도 검정신청본에는 모두 빠졌다.

전시강제동원에 대해서도 “많은 조선인이 끌려갔다”는 현행본의 서술을 바꿔 “전쟁말기에 징용·징병제가 확대 적용됐다”고만 적었다. 강제동원에 대한 한국인들의 저항이나 종군위안부 사실 등도 모두 빠져 있다. 또 2001년 당시 ‘자체정정’을 통해 검정신청본에서 삭제했던 “한국 국내에서는 일부 병합을 수용하자는 소리도 있었”다는 문장을 이번엔 되살렸다.

또 한승조 고대 명예교수가 밝혔듯이 조선 근대화를 위한 일본의 노력과 대비해 청과 러시아는 ‘악마화’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청은 최후의 유력한 조공국인 조선만은 잃지 않으려고 일본을 적으로 간주하게 됐다”거나 “러시아는 부동항을 찾아 조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적으면서 청·일, 러·일 전쟁의 책임을 중국과 러시아에 넘겼다. 역사교육연대는 “2001년도 검정신청본에서는 제국주의 열강간의 갈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벌였다고 서술했다고 지적했다.

◇ 되살아난 대동아공영론 = 근현대사에 대한 왜곡은 침략전쟁이 ‘대동아공영’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현지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구미 각국으로부터 독립달성을 위해 일본의 군정에 협력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남몰래 일본의 남진을 학수고대했다” 등의 서술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침략·지배에 대한 현지인의 반발 등 기존의 서술은 모두 삭제했다. “대동아전쟁은 일본의 자존자위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쟁을 찬양하는 서술을 크게 늘렸다. 교과서 제3절 ‘입헌국가의 출발’은 전체 14쪽 가운데 절반을 전쟁에 관한 서술로 채웠다. 특히 ‘일본해 해전’이라는 꼭지를 새로 만들어 “세계 해전사상 이만큼 완전한 승리를 거둔 예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대륙침략에 대해서는 전쟁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현행 판에선 ‘협조외교의 좌절과 군부의 대두’였으나 ‘중국의 배일운동과 협조외교의 좌절’로 제목을 바꿨다. 중국이 일본의 대륙침략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관동군의 만주지배 강화에 관한 표현은 모두 삭제하고, 중국에 대한 ‘적대적’ 서술을 강화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동아시아 평화깨는 암적 존재”
일 우경화 우려 목소리 드높혀

■ ‘우익교과서 기자회견 표정’ “동아시아인이 연대해 이 교과서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대표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등)는 11일 일본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두 시간 뒤인 오후 4시30분께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일본 후소사 교과서를 분석한 내용을 발표하며, 이 교과서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와 안병우 한신대 교수, 이수일 전교조 위원장, 김지예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이 참석한 이날 기자회견에는 5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서 교수는 일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교과서에 대해 “국가주의 또는 전쟁국가화나 군국주의를 고취하려는 의도를 가진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교과서”라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우호선린관계, 교류와 협조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역사교육연대 쪽은 ‘새역모’의 교과서 외에 일본내 다른 종류의 역사교과서들도 함께 검토해, 이들 교과서에서 나타나는 역사 왜곡과 역사 서술의 우경화를 공개 비판할 예정이다. 양미강 상임운영위원장은 “새역모의 교과서가 오는 4월에 일본 문부성 검정을 통과하게 되면 이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일본 시민사회는 물론 한국 시민사회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며 “지난 2001년 상황을 보면 ‘새역모’ 교과서의 영향 때문에 다른 종류의 역사교과서들도 우익적 성향이 강해지고 있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역사교육연대 쪽은 현재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100여곳을 중심으로 역사왜곡 교과서가 한-일 교류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힘쓸 계획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검정본 누출금지 방침 어겼다”맹비난

■ 일본 양심세력 움직임 11일 오후 일본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왜곡 역사교과서’ 관련 기자회견은 사안의 ‘폭발성’을 반영한 듯 한국과 일본은 물론 다른 나라 기자들까지 몰려, 준비된 자료 30여부가 일찌감치 동이 나는 등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이 펴낸 왜곡 교과서(후소사 출판)의 개악된 내용 공개와 함께 진행된 이날 회견은 이 교과서 채택을 주도하는 일본내 우파 인사들의 불법행위에 초점을 맞췄다.

다카시마 노부요시 류큐대 교수와 우에스기 사토시 ‘일본 전쟁책임 자료센터’ 사무국장은 “지난 2001년 ‘왜곡 교과서 검정본의 내용이 사전에 공개된 것이 채택에 큰 장애가 됐다’는 새역모 쪽의 강력한 비난에 따라, 문부성이 2002년 검정본 누출금지 방침을 정했다”며 “(이를 이용해) 새역모 쪽이 다른 출판사의 손발을 묶어놓고 자기네 것만 미리 선전하는 불법적 채택전술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입수한 새역모 쪽의 검정본은 도쿄·사이타마·교토·와카야마 지역의 교육장·교육위원 등에게 지난해 11∼12월 배포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교육장이나 교육위원 가운데는 후소사로부터 검정본을 직접 받은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소사는 또 우파 정치인들을 앞세워 교육위원 면담을 요청하는 등 채택권을 가진 교육위원을 압박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견 주최 쪽은 새역모 쪽의 이런 불법행위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이를 묵인 또는 간접 지원하는 문부성에 비난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견에 이어 일본 시민단체들은 다음달 초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될 때를 전후해, 왜곡 교과서의 부당성과 우파들의 불법행위를 본격 홍보해나갈 예정이다.

(한겨레신문 / 박중언 특파원 2005-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