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교과서 왜곡] ‘뒷북’ 금물…동북공정 적극 대처를

중국이 역사교과서에서 한국사를 삭제하거나 왜곡한 데 대해 국내 역사학자들은 “역사엔 타협이 없다”며 정부와 학계 모두가 나서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중국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감정적 대응은 득보다 실이 많다며 긴 안목을 가지고 체계적이면서도 치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역사교과서 문제는 외교·정치적 문제 = 국내 역사 학계는 이미 수년전부터 중국의 한국사 관련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며 정부의 적극 대응을 주문해 왔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개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 불필요한 대응은 중국을 오히려 자극시킬 수 있다”며 여전히 ‘조용한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술적 논란이 있는 부분은 학계가 담당할 일이라며 공을 넘기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는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는 학문적 문제를 넘어 정치적·정책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북공정은 역사학자 개인 차원의 주장이 아닌 중국의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학술적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는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뒷수습에 나설 뿐 긴 호흡의 정책 마련은 부족했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안병우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와 유적지 안내판의 원상 복구 문제가 해결됐다는 소식이 아직도 없을 만큼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며 “눈앞의 사안에만 매몰되지 말고 원대한 동북아시아 경영프로젝트를 마련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또 관련 연구자들을 결집시키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연구성과를 번역해 중국 학자들에게 제공하는 등 국가적으로 대응하는데 비해,국내 어디에도 중국 자료를 체계적·종합적으로 수집하는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국수주의와 아마추어리즘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 중국에 맞설 한국 역사의 힘을 키워야 = 학술적으로는 중국과의 싸움에 밀리지 않을 충분한 연구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 학계의 현실은 너무나 열악하다. 고조선사 전문 연구자는 한두 명에 불과하고, 고구려 발해사 연구자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유용태 교수는 “전쟁에 나설 병사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학자들은 역사 교육의 강화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중·고등학생 대부분이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을 알고,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흥분하지만 실상 고구려가 언제 존재했고 왜 우리 역사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학생은 드물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또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를 해외에 알리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고대사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가 거의 해외에 전해지지 않으면서, 미국·유럽의 학자나 학생들이 중국측의 논리가 반영된 고대사를 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 서적으로는 고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신론’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출간된 것이 고작이고, 국내에서 영문으로 정기 발간되는 한국학 관련 잡지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등 4∼5개에 불과하다. 학자들은 따라서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해외 한인학자들을 적극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 공동 학술연구를 통해 = 전문가들은 중국과 한국사 공동연구 및 교과서 공동 집필을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역사적 논란이 있는 부분은 공동 연구·집필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고 왜곡 시비를 피해가고 있다. 독일과 폴란드, 독일과 오스트리아·스위스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등은 이런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예를 들어 ‘역사와 지리 교과서 개정을 위한 독일-폴란드 위원회’의 경우, 1972년 바르샤바에서 역사·지리·교육 학자, 교과서 전문가 및 정치인까지 참가해 첫 회의를 연 뒤 1975년까지 양국을 오가며 8차례의 교과서 편찬회의를 진행했고 결국 양측의 공통분모를 모아 1976년 4월 권고안 편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중국 칭화대에서 한국과 중국 양국 학자들이 함께 연구할 ‘한·중 역사문화연구소’가 문을 연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학자들은 또 중국의 역사왜곡과 관련한 이해 당사국들간 연대 활동을 강조했다. 혼자서 중국과 싸워 나가기보다는 몽골·러시아·베트남 등 중국 접경국들과 국제학술교류를 지속적으로 진행, 공동 대응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과의 학술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학자들은 전했다. 학자들은 북한지역에 있는 고구려 발해 고조선 등의 유적을 공동 조사하는 등 남북이 함께 동북공정에 적극 대응하는 합동 연구 체제를 갖추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국민일보 / 지호일 기자 2005-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