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교과서 왜곡―대학 교재도 문제] “고구려도 中 소수 지방정권” 한술 더떠

초급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이어 중국의 대학교 역사교재도 한국사 관련 부분을 중화주의 시각에서 왜곡·누락·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유용태(48) 교수는 9일 ‘중국 대학 역사교재의 한국사 인식과 중화사관’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유 교수는 중국 대학 역사교재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인민출판사 ‘세계통사’(전 6권),고등교육출판사 ‘세계사’(전 6권)를 분석했다. 각각 1997년과 1994년 마지막 개정판이 나온 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두 교재는 각각 15만부 가량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논문은 보완 과정을 거쳐 이달 말 고구려연구재단에 제출된다.

◇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 지방정권” = 1997년판 세계통사 고대사 부분은 난징대 항저우대 화동사범대 등 중국 각 성의 대표적 역사교수 10여명이 공동집필했다. 유 교수는 논문에서 이 교재의 1997년판과 1983년판을 비교 분석했다.

1983년판 세계통사의 한국사 부분은 ‘고대 조선 역사상 이미 수세기에 걸쳐 고조선국이 존재했다. 기원 수세기 전 조선에 청동기가 출현, 독특한 풍격의 청동문화가 발전했다. 기원 전후 우리나라(중국) 동북에서 일어난 고구려가 조선반도 북부로 발전해 5세기초 평양으로 천도했다’는 개관에 이어 고조선 고구려 삼국시대 순으로 소제목을 붙여 구체적 내용을 서술했다.

그러나 1997년판 한국사 부분은 ‘조선사는 조선반도의 역사’라고 정의하며 시작한다. ‘고구려가 중국 동북지방에서 일어나 조선반도 북부로 발전했다’고 명시한 1983년판과 달리 한국사의 범위를 현재 한국 영토로 제한한 것이다. 이와 함께 고조선 고구려 삼국시대 등 소제목은 완전히 사라진 채 부분적으로 고구려를 언급하면서도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 지방정부’로 단정하고 있다.

1997년판은 ‘고조선국’ ‘독특한 청동문화’ 등의 기술을 삭제한 채 ‘조선반도에 최초로 건립된 국가정권은 중국 서주(西周)가 한반도 북부에 분봉(分封)한 기씨조선이다. 서한(西漢) 초 연나라 사람 위만이 그 뒤를 이었고, 한무제는 위씨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곳에 군현제를 실행했다’는 대목을 넣었다. 조선 최초 국가는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은 세력이 한반도 북부에 세운 국가이며, 그 뒤로도 줄곧 중국에 예속돼왔다는 것이다.

또 고대편 442쪽에는 ‘고구려는 한나라 현도군 관할 하의 중국 소수민족이며 기원전 37년 정권을 수립한 뒤에도 동한 위·진·남북조 수·당에 이르기까지 줄곧 중원 왕조에 예속된 중국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다’고 기술돼 있다. 교재 지도에도 전국 시대 연나라 때부터 한반도 북부 대동강까지 모두 중국 영토로 표기돼 있다. 이런 식의 지도는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까지 계속 실려 있다.

◇ 중화사관과 식민사관 = 세계통사와 고등교육출판사의 세계사에 발해사는 아예 실리지 않았다. 발해는 분명히 당나라 지방정부이므로 세계사가 아닌 중국사에서 기술할 내용이라는 시각이다. 세계사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사를 7세기인 통일신라시대부터 서술하고 있다.

통일신라 이전의 한국 고대사는 완전한 중국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유 교수는 “세계통사는 한국사 부분에 고구려 관련 언급이 남아 있지만 세계사에는 아예 빠져 있어 분석 자체가 무의미했다”며 “동북공정이 예정대로 추진돼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 가장 영향력있는 교재인 세계통사에서도 고구려가 완전히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통사는 또 고대 일본을 기술하면서 대표적 식민사관인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차용했다. 이 책은 ‘대화국가(야마토시대)는 이른 시기부터 이웃나라 조선을 침략해, 4세기 중엽 조선반도 남단의 변한가야국 수중에서 임나(지금의 부산,김해일대)를 탈취, 북침 거점으로 삼았다’고 쓰고 있다.

유 교수는 “중국 대학교재는 강화된 중화사관에 식민사관이 수용돼 동거하고 있다”며 “한국 고대사는 중국 지방정권인 고구려의 남진과 임나를 거점으로 한 일본 세력의 북진이라는 중·일병진 구도 속에 갇혀버린 형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997년부터 이런 역사서술이 자행된 마당에 지난해 8월 한·중 외교부 당국자가 고구려사 왜곡 내용을 교과서에 반영하지 않기로 구두합의한 것은 뒷북치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 지호일 기자 200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