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교과서 왜곡―발해·고려·조선 부문] 국내 학계 반박

7∼10세기 신라와 남북시대를 구가했던 발해의 역사를 ‘당나라 지방정부’로 기록한 중국의 실험본 초급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고구려사 삭제 못지않게 발해사의 중국사 편입 역시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썼다 = 중국 교과서는 ‘말갈족이 세운 나라로 그 수령을 당현종이 도독으로 삼아 발해군왕에 책봉했다”고 기술, 발해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경성대 한규철 교수는 “책봉은 양국간의 외교적인 승인행위일 뿐”이라며 “발해를 비롯해 고구려,백제,신라,왜 등에 대한 당의 책봉 행위가 곧 속국이나 지방정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발해는 지배층이나 피지배층 모두 고구려인이었다”면서 ‘발해의 기층 민중이 말갈족이었다’는 중국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우리 민족을 중국이 ‘동이족’이라 부른 것처럼 말갈도 스스로가 말갈이라 한 것이 아니라 동북방 지역이나 고구려 변방 사람을 낮게 부르는 범칭이자 비칭이었다. 따라서 말갈의 진정한 의미는 말갈 앞에 붙은 ‘속말’이나 ‘백산’ ‘흑수’ 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이같은 주장은 동북공정 이론을 처음으로 제공했던 중국 학자 순진지도 인정한 것으로, 말갈 중 헤이룽강 중하류에 거주했던 흑수말갈이라고 불렸던 민족이 비고구려 계통이며 진짜 말갈족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발해 주민들은 속말말갈(쑹화강 지역민), 백산말갈(백두산 지역민)이 중심으로 이들은 고구려의 후손들이며 종족 계통도 부여 고구려와 같은 예맥계다. 한 교수는 “고구려와 흑수말갈족은 말과 풍속이 달랐으며 일본에 발해가 말갈국이라 하지 않고 발해국 내지 고려국으로 자칭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역사학자들은 발해가 독자 연호와 시호를 사용하고, 732년 무왕 시절 당과 전쟁을 치를 만큼 자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 문화적으로도 발해인들은 온돌을 사용했으며, 고구려 지배층과 같은 무덤양식을 썼다고 밝혔다.

중국이 발해사를 굳이 자신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기도에 대해 고구려 연구재단 임상선 연구위원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는 만큼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기 위해 먼저 발해부터 편입시키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고려 조선 역사도 폄하했다 = 성균관대 사학과 신해순 교수는 “중국이 임진왜란 당시 원병을 보낸 것은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 나라의 이익이나 미칠 영향을 고려한 ‘순망치한’적 발상에 따라 파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교과서가 고려의 역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15세기 중엽 조선인들이 한자에 근거해 이두와 언문을 창조했다’는 어이없는 오류를 기록한 것 역시 이른바 ‘천하사상’에 근거한 편향된 중국의 역사관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국대 사학과 윤내현 교수는 “하늘 아래 모든 백성과 땅은 중국 천자의 것이라는 천하사상이 고대부터 이어져온 중국 정치 사상의 조류”라면서 “이 사상이 근대화하면서 통일적 다민족국가 이론으로 변형돼왔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이같은 논리는 중국 내 56개 민족이 다같이 형제민족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단합’ 효과 외에 어떤 민족,영토도 미래에 중국에 편입될 가능성을 열어둔 무서운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일보 / 한장희, 강준구 기자 200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