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교과서 왜곡―발해·고려·조선 부문] 농민봉기는 “띵호아”?

중국교과서는 한국에서 일어난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전쟁을 조선 인민이 일으킨 항일민족해방운동이라고 추어올리고 있다. 이는 농민봉기를 사회주의체제 전환과정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고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농민전쟁과정에서 일본에 청일전쟁을 일으킬 빌미를 제공해 조선지배의 기회를 준 데 대해서는 별다른 서술을 하지 않고 있다.

상하이교육출판사 9학년 세계사 교재는 갑오농민전쟁에 대해 조선이 일본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한 뒤 1893년 대흉년이 오자 곳곳에서 굶주린 사람이 생겼고 1894년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뭉쳐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서술했다. 이 교과서는 이를 조선 인민의 항일민족해방운동 서막이 됐다고 높이 평가하며 비중있게 다룬다. 중국이 자본주의체제와 경쟁해왔고 사회주의체제 전환과정에서 농민봉기가 중요한 기점이 됐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이런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원인이 돼 일어난 청일전쟁에 대해 대부분 교과서는 청의 책임을 서술하지 않고 있다. 인민교육출판사 중국역사 8학년 실험본 교재는 1894년 일본 함대가 중국 함대를 공격했고 일본이 조선정복 후에는 중국을 침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즉 중국은 일본의 조선침략전쟁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화동사범대학이 출판한 실험본 중국역사 7학년 교재와 베이징사범대학 실험본 역사 8학년 교재 역시 조선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조선 국왕이 청국 정부에 파병해 진압해달라고 했다는 내용만 서술돼 있고 청일전쟁 관련 내용을 청·일간 충돌로 축소됐다.

그러나 청의 리훙장과 일본 이토 히로부미는 1885년 톈진협정을 체결하고 조선에 내란이 발생할 경우 서로에게 알리고 출병하기로 협약했다. 그래서 학계는 청의 협정체결이 일본에 사실상 조선침략 빌미를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선지배가 본격화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 교과서에 이 부분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구려연구재단 윤희탁 연구위원은 “중국교과서는 동학농민전쟁의 민중봉기적 성격은 강조하면서도 청의 내정간섭이나 중화제국주의 행태는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잘못됐던 역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중국이 자신의 체제에 유리한 부분은 강조한다”고 분석했다.

(국민일보 / 강주화 기자 200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