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정부의 한심한 ‘恐中症’

“지금 큰 일날 기사를 썼어요.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외교통상부나 다른 데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 A교수가 교육인적자원부의 용역을 받아 모든 종류의 중국 역사 교과서를 1년 동안 분석한 결과, 중국 교과서에서 우리나라 고대사가 제외됐다는 내용을 본보(7일자)가 보도하자 교육인적자원부 담당자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이같이 말했다.

가판 신문이 나온 6일 저녁 전화를 타고 날아온 담당 공무원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그는 기자가 “자료를 읽어봤느냐”는 질문에 “읽어보지 않았다”고 답변했고, “공무원이 자료를 읽어보지 않고 기사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느냐”고 추궁하자 “미안하다. 앞으로 A씨를 통해 말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보고서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 공무원은 연구를 담당한 A교수에게도 전화를 한 걸로 확인됐다. 그가 A교수에게 무엇이라고 추궁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라서 확언할 수 없지만 상식을 벗어난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A교수가 보인 태도를 볼 때 교육부 공무원이 어떤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처럼 담당 공무원이 좌충우돌 A교수와 해당 기자에게 성화(?)를 부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외교부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다른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외교부 관계자가 ‘고구려 역사 왜곡을 거론한 일부 학자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이런 기사까지 나면 중국 정부와 대사관이 가만있겠느냐’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지난해 모 교수가 중국에 갔을 때 중국측에서 한·중 관계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 대해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고 했다”는 외교부 관계자의 발언은 그가 중국 외교부 직원인지 헷갈리게 한다. 앞서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정부 당국의 일련의 태도 또한 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관이 다르고 또 외교 마찰이 될 우려가 있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피해간다면 고구려사는 아마도 강자(중국)의 역사가 될지 모른다. 이러고도 주권 국가라 할 수 있는지.

(국민일보 / 신창호 기자 200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