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재판과 한반도평화의 관계?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혐의를 밝힐 재판이 드디어 시작된다.

지난 2월23일 배심원단이 선정되면서 캘리포니아주 산타 바바라 카운티 법정 밖에는 미국 유수의 언론매체에서 파견된 기자들과 방송카메라가 장사진을 이루었다.

재판이 최소한 반년은 끌 것이라니 언론사로서는 두고두고 좋은 취재감이 생긴 셈이다.

마이클 잭슨 재판에 대한 미국 언론의 지대한 관심은 언론 전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한 가지 문제는 마이클 잭슨을 다루는 미국 상업언론의 태도가 과연 공정한가이다.

아동 성추행이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한 범죄이긴 하지만, 본인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은 마당에 그를 악의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의 문제다.

미 언론, 마이클 잭슨 보도 공정한가

마이클 잭슨만큼 그의 음악에 대한 찬탄과 동시에 사생활과 관련된 각종 악평을 받은 이도 드물다.

아마 이러한 악평이 나도는 데는 그가 잦은 성형수술을 통해 흑인에서 백인으로 변신하려 한다는 세간의 인식이 결정적일 것이다.

미국의 타블로이드 언론은 일찍이 마이클 잭슨이 늙지 않기 위해 산소 캡슐에서 잠을 잔다는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린 바 있고, 최근에는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일그러진 얼굴 사진을 대서특필해 대중의 혐오감을 부추겨 왔다.

마이클 잭슨의 팬들은 이러한 언론 보도에 대해 불만이 많다.

1993년 마이클 잭슨은 오프라 쇼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피부가 탈색되는 백반증이라는 희귀 질병을 앓고 있어서 외출할 때면 햇빛 차단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특별한 분장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그의 팬들은 마이클 잭슨이 스스로 원해 성형수술을 받은 건 두 번 뿐이며, 나머지는 공연중 사고로 코가 내려앉아 받은 수술이 실패해 계속 받아야 했던 재수술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명이 모두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미국 언론이 마이클 잭슨과 대중간의 화해를 시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이간질하는 성향을 보여온 건 부인하기 어렵다.

또다른 문제는 오락매체는 별도로 치더라도 과연 정규 보도매체가 일종의 연예인 스캔들인 이 사건을 얼마나 비중있게 보도해야 하는가이다.

미국의 여러 언론인들은 이번 사건을 약 10년전 미국 언론의 취재경쟁을 불러일으켰던 O.J. 심슨 재판과 비교한다.

1994년 왕년의 흑인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은 이혼한 백인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다음해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는데, 이 재판 과정을 케이블 채널이 생방송함으로써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시 이를 둘러싼 미국 언론의 속보경쟁은 대단해서 1995년 방송뉴스가 가장 자주 다룬 소재가 바로 이 재판 관련 소식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언론의 행태는 선정적인 소재에 매몰되어 중요한 사안에 대한 보도를 등한히 했다는 비판을 낳았다.

이제 막 시작된 마이클 잭슨 재판 보도가 10년 전의 과거를 답습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이들은 그의 유명세를 감안할 때 그럴 것이라고 보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생방송 법정 중계가 금지된 점 등을 들어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고 예견한다.

스캔들 보도의 나비효과?

한 가지 언급할 대목은 당시 O.J. 심슨 재판이 가져온 다소 엉뚱한 나비효과다.

1994년 후반 및 95년 초엽은 영변 핵시설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미국의 언론비평가 제임스 팰로우스(James Fallows)는 ‘브레이킹 더 뉴스’(Breaking the News)라는 책에서 한국의 어느 외교관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언제 핵위기가 고비를 넘겼다고 판단했는가라는 질문에 이 외교관은 미국 언론이 O.J. 심슨 보도를 시작했을 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언론의 관심이 유명인의 스캔들에 쏠리면서 대북협상론자들이 호전적인 미국 정계와 언론의 정치공세로 인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최근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하면서 한반도는 언제 위기가 몰아칠지 모를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만일 미국 언론이 과거와 같은 보도행태를 재연하면 팰로우스 같은 이들은 참을 수 없는 언론의 가벼움을 느끼겠지만, 필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김남두 / 미 텍사스주립대학 저널리즘 박사과정>

(미디어오늘 200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