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통일이 아니라 통합을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길에 지나는 남산순환도로에 한동안 두 개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통일조국을 아이들 품에 안겨주고 싶습니다” “7천만의 통일된 힘으로 전세계에 떵떵거리고 살고 싶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라는 민주노동당 해방촌 분회’가 내건 이 플래카드를 보면서 ‘통일(統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곤 한다.

통일은 남녀노소, 이념과 출신 지역을 막론하고 우리 민족의 비원(悲願)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1300년 가까이 하나의 나라를 유지하며 살아온 한민족에게 어느날 갑자기 닥친 분단(分斷)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물론 광복 당시 우리 내부에 이념적 차이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분단은 기본적으로 강대국에 의한 것이었기에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부르며 자라난 대부분의 사람에게 통일은 강한 심정적 울림을 갖는, 신성불가침의 단어가 됐다.

하지만 분단 상태로 반세기를 훌쩍 넘기면서 ‘통일’은 이제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단어가 됐다. 통일은 나뉜 것들의 동질성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빨리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함축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남·북한은 더 이상 동질적이지 않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남·북한은 두 개의 몹시 다른 나라다. 이를 단기간에 다시 하나로 만드는 것은 쉽게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독일의 경우 서독이 남한보다 월등한 국력을 갖고 있었고, 동독과의 격차도 우리에 비해 작았지만 통일이 된지 10년이 훨씬 지나도록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렇다고 마냥 지금처럼 나뉘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최근 이지순 서울대 교수(경제학)가 펴낸 ‘남북한 경제의 이질성’(서울대 출판부)이란 작은 책자는 이 고민을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한다. 1945년 분단될 무렵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 남짓의 단일경제체제였던 한반도는 이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선 중진 자본주의국가와 1000달러가 채 안되는 후진 사회주의국가로 분리됐다. 남·북한이 다시 하나로 합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한이 계속 성장하여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북한도 발전하도록 도와주어 둘이 비슷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는 한반도가 하나로 되는 길은 이제 통일이 아니라 ‘통합(統合)’이라는 것이다. 통합은 이질성을 전제로 하고, 당분간 나뉜 채 있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하나가 되는 과정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이 책은 남·북한의 ‘경제통합’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사회통합’‘정치통합’’문화통합’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북한 지배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나 예상치 않은 국제정치적 요인에 의해 남·북한의 정치통합이 어느날 갑자기 닥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라도 ‘경제통합’ ‘사회통합’ ‘문화통합’의 오래고 힘든 과정은 여전히 우리 앞에 과제로 남는다.

한반도의 분단은 말할 나위도 없이 비정상이다. 하지만 남·북한이 다시 하나로 되는 것이 한민족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자칫 격정에 휩싸이기 쉬운 ‘통일’이 아니라 이성과 지혜에 바탕한 ‘통합’이 우리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며칠 전 ‘통일’ 플래카드가 내려진 것을 발견했다. 그 자리에 이번에는 ‘통합’ 플래카드를 내걸어야 할 것 같다.

(조선일보 / 이선민· 문화부 차장대우 200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