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리더십 콘퍼런스] '리더십 콘퍼런스'를 보고

'아시아 통합' 먼 훗날 얘기 아님을 확인

동아시아 국가들은 오랫동안 역내(域內) 협력과 통합의 문제를 외면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시아 지도자 회의는 아시아의 통합도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시켜 줬다. 일본·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뉴질랜드의 전직 국가수반들과 글로벌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의 혜안은 동북아 협력의 불꽃을 점화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토론자들은 갈등과 반목의 역사로 점철된 동북아 국가들도 통합의 그랜드 디자인을 짜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또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아세안(ASEAN)+동북아 3국(한·중·일)’의 협력 구도에 장기적으로 미국·호주·뉴질랜드까지도 연계된 통합체계가 제안됐다.

세계적인 지도자들은 21세기를 기술 변혁의 시대, 지구촌 경제시대로 규정하고, 특히 동아시아는 중국의 부상(浮上)으로 역내 경제 지도가 급격히 바뀌고 있음을 주목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9·11사건 이후 미국이 추구하는 일방주의에 대해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사이의 논쟁도 있었고, 글로벌화 과정에서 일어서는 부국(富國)과 빈국(貧國)의 격차문제도 제기됐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공식화되고 있는 ‘아세안+3국’의 공조체제에 대한 논의도 구체화됐다. 현재 이들 국가 간에는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왑(swap·외환이 부족할 때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에서 외환을 빌려쓰는 것)장치가 마련됐고 무역과 투자에서 국경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토론자들은 역내 국가 간 인력 이동을 공동 번영의 수단으로 제안했다. 그 사례로 말레이시아에는 인구의 8%에 해당하는 200만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있고 뉴질랜드에는 10%에 이르는 40만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있음도 지적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동시화·순간화로 진전되는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에 선제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반세기 이전 2차 세계 대전의 포연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역사적 화해를 단행했고 마침내 석탄과 철강 동맹을 결성했다. EU의 교훈을 아시아의 정치 지도자들이 실천으로 옮겨간다면 동아시아 통합의 길은 꿈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제체제 아래 세계적인 기술력을 배양하는 것은 물론, 인류적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역내 공공재(公共材)의 생산에도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어 국제적으로 도덕국가로서의 국격(國格)을 높여 가야 한다.

(조선일보 2005-3-4)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중때문에 주변국 공동화" "오히려 경쟁력 높아져"

제4주제 수퍼파워 중국이 가져올 변화
사카키바라 일게이오대 교수
"한중일 3국이 공동 통화기금 만들어 외환관리하자"

“중국이 제조업을 흡수해 버리면, 주변 나라의 실업률을 높이는 것 아닌가.”(홍순영 전 외교통상부 장관)

“노동집약적인 생산 설비 위주로 중국에 이전됐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쭤쉐진 상하이 사회과학원 수석부원장)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둘째날인 4일 제4주제 토론회에서는 ‘중국이 주변국에 위협인가, 경제 성장의 파트너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한·중·일 전문가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 중국의 부상, 위협인가 기회인가

중국이 주변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중국의 철강소비 급증으로 지난 1년간 세계 철강가격은 64%나 급등했고 철강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가격도 4년간 3~4배가 올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중국이 철강 생산 설비에 과잉투자를 계속할 경우, 공급 과잉으로 세계 철강업계는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도 4~5년 전에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이전, 산업이 공동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며 “그러나 간단한 제조공정을 중국으로 이전한 결과, 오히려 생산원가가 절감돼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쭤쉐진 수석부원장도 “중국의 성장을 위협으로 보는 사람들 중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덩치(영토)가 크기 때문에 주변국이 위협적으로 느끼지만 중국은 사실 온순한 코끼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 “중국 소비중심국가로 발전할 것”

사카키바라 교수는 1억3000만~2억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중산층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산층이 크게 늘어나면서 중국은 세계의 생산기지로서뿐만 아니라 소비시장으로도 급성장하고 있어 머지않아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러스 라디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저축률이 40%로 높고, 국민소득이 낮아 앞으로 내수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수입관세가 인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개방된 경제체제를 갖고 있다는 점도 중국경제의 미래에 긍정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경제 통합

니컬러스 라디 선임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의 고부가 가치 IT(정보기술) 부품은 중국에서 조립과정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돼 최종 소비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때문에 설령 중국 경제가 침체된다고 해도 미국 내수시장에 큰 변화가 없다면 한·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다국적기업 주도로 급속도로 경제통합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한·중·일 3국이 외환보유고의 5~10%를 출연, 일종의 아시아 통화기금을 만들어 공동으로 외환 관리를 하자고 제안했다. 장즈웨이 상하이 자동차그룹 수석부총재는 “아시아 다국적 기업들이 협력을 강화해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우리도 쌍용자동차와 협력관계를 구축한 것이 생산과 판매에서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순영 전 장관은 “중국이 경제 대국에 걸맞은 정치 대국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며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 통일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조선일보 200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