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보유 선언 3주…미국이 싸늘해졌다

더 강경해진 정부·의회

대북 식량지원 재검토…'민주주의 증진법' 압박

▶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북한이 지난달 10일 핵 보유를 선언하고 난 이후의 흐름이다.

미 행정부는 북한을 자극할 만한 발언은 극히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 복귀의 전제로 내거는 각종 조건에 대해 백악관과 국무부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빨리 6자회담에 나오라"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1기 때 존재했던 대북 온건론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국무부 관계자는 "미국은 앞으로 몇 개월밖에 더 참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고, 대북 봉쇄로 가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 의회는 3일 '민주주의 증진법'을 상정했다. 지난해 '북한 인권법'에 이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또 다른 카드다.

◆ 식량 지원 재검토=에번스 리비어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대리는 2일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계속할지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북한은 지난해 풍작이었기 때문에 1990년대 같은 대량 기아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미국은 투명성과 감시라는 측면에서 북한에서 일어나고 일에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 등을 통해 80만t 이상의 식량을 북한에 공급해 왔다.

북한은 지난 연말 WFP 요원의 북한 내 식량 공급 현장 방문을 허용치 않았고, 과거 허용했던 10개 지역에 대한 접근도 거부했다. 이에 따라 WFP는 이들 10개 지역에 대한 식량 공급을 중단했다.

리비어 차관보 대리는 "미국은 대북 식량 원조를 북핵 6자회담 등 정치적 요인들과는 연계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식량 지원이 필요한지, 다른 지역과 우선 순위는 어떤지, 식량이 정작 굶주린 주민에게 공급되는지 등의 기준이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미 행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재검토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대북 봉쇄로 가려는 준비단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강경해지는 미 의회=미 상.하원 중진의원들은 3일 '민주주의 증진법안'을 상정한 뒤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우리는 북한처럼 (미국과) 외교 관계가 없는 국가의 자유에 대해 보고서를 낼 것"이라면서 "북한 같은 나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우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증진시킬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지구상에서 자유를 성취할 마지막 국가는 북한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화당 프랭크 울프 하원의원은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다스리던 알바니아에도 미국 대사관이 없었지만 결국 민주화됐다"면서 "북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조셉 리버먼 상원의원도 "폭정과 그로 인한 절망이 테러를 부양한다"면서 민주주의 확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등 돌리는 진보진영

협상론 편들던 카네기재단 "북핵, 군사충돌도 대비해야"

미국의 진보적인 싱크탱크인 카네기 재단이 3일 핵 확산 문제에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의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목은'핵 안보의 전략(A Strategy for Nuclear Security)'.

보고서는 "북한은 경제 사정 때문에 핵무기나 핵물질을 다른 나라 또는 테러 그룹에 팔아 국지적인 위협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은 북한의 핵 판매를 용인하든가,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벌이든가 하는 끔찍한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중국은 북한의 핵을 좋아하진 않지만 참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중국을 통해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미국의 기대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중국은 북핵 문제가 계속 남아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걸 막는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다음은 보고서가 제시한 북핵 문제에 대한 대안과 해법이다.

◆ 유엔 안보리에 빨리 상정해야=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방법을 써야 한다. 우선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북핵 문제를 안보리에 상정해야 한다. 북핵이 안보리에 상정돼야 미국으로선 북한이 과연 무엇을 원하고 어떤 조건 아래서 핵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는 게 쉬워진다.

◆ 고위급 특사 필요하다=미국은 대통령이 임명한 특사를 보내 북한 측과 신속한 협상을 해야 한다. 특사는 (명목뿐 아니라)실제적인 협상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 북한 측에서도 거기에 상응하는 인사가 대표로 나와야 한다. 북핵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할 수도 있고, 북.미 양자회담을 할 수도 있지만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 밀접한 공조를 해야 한다.

◆ 최악에 대비해야=미국과 동맹국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지역 안에서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역량을 강화하면서 다른 나라들에도 '북한의 선례를 따라봐야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한 '레드 라인(red line)'을 설정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수출하려고 시도하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큰 위협으로 간주된다는 최소한의 기준을 명백히 해야 한다. 미국은 대북 규제와 봉쇄, 그리고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까지를 포함한 모든 결과에 준비해야 한다.

◆ 카네기 재단=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세계 평화를 위해 1910년 1000만 달러 기금으로 창설한 재단. 정식 명칭은 카네키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이다. 워싱턴의 대표적인 중도적 성향의 싱크 탱크다. 부시 1기까지는 대북 협상론을 주장해 왔으나 북한의 2.10 핵보유 선언 후 당근보다 채찍 쪽에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워싱턴=김종혁.강찬호 특파원

북.미 핵 문제 발언 일지

▶2.10=북한 외무성, "우리는 이미 부시 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 고립 압살 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핵확산 금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했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고 선언

▶2.10=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언급

▶2.15=스콧 매클렐런 미국 백악관 대변인,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원하며 그것이 국제사회에서 고립화를 피하는 길이다." 정례 브리핑에서

▶2.16=포터 고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북한의 공갈협박 외교일 가능성 있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증언

▶2.17=조지 W 부시 대통령,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 우방국과 협의해 북핵 문제 대처 방안을 결정할 것이다." 언급.

▶2.21=김정일 국방위원장,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하면 6자회담 복귀 가능하다.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도 해명해야 한다." 중국 특사 만난 자리에서 발언.

▶2.24=부시 대통령,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해서는 안 된다." 미.러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밝혀

▶3.2=북한 외무성 비망록,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국제조약이나 그 어떤 국제법적 구속을 받고 있는 것이 없다."

(중앙일보 / 김종혁.강찬호 기자 2005-3-4)

[세계를 보는 눈] 미국식 민주화의 오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2기 행정부의 국정목표로 밝힌 ‘전세계 민주주의의 확산과 폭정의 종식’을 위한 수단이 구체화되고 있다. 3일 미 상하 양원에 동시에 상정된 ‘2005 민주주의 증진법안’은 2025년까지 전세계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영향력을 동원할 것”을 규정하고 그 방법과 구체적 조처들을 담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고 미국에 ‘폭정의 종식’ 발언을 취소·사과하는 등 적대시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북한을 핵심대상국가로 지목한 이 법안은 한반도에 또 한차례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게 분명하다. 북한만이 아니라 ‘폭정의 전초기지’로 함께 지목됐던 쿠바, 미얀마, 이란, 벨로루시, 짐바브웨 등 5국을 포함해 전세계 45개 대상국가들의 강한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하다. 이들 나라에는 러시아, 중국 등도 들어 있다.

‘독재종식과 민주주의지원법’이라는 원래의 법안 명칭에서 보듯, 이 법이 노리는 바는 분명하다. 대상국가의 주재국 외교관이 현지에서 민주주의 전파의 선봉에 서도록 규정한 이 법안은 주재국의 국내정치에 대한 개입을 금지한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도 어긋나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

민주주의의 보편원칙은 모든 나라에 해당하며 민주주의의 확산이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고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단선적 사고방식은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우월적 가치’를 강요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행태와 다름없다.

전세계 민주주의의 양상이 나라마다 차이가 있듯이 민주주의란 일종의 문화이며, 민주화는 외부의 강요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을 역사적 사례들은 보여주고 있다. 또 ‘제 눈의 들보’는 외면한 미 국무부의 연례 인권보고서 예에서도 보듯, 자신은 언제나 선이며 진리라는 저들의 시각은 지극히 오만하고 위험해 보인다. 설사 민주화에 외부 압박이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그 필요 여부를 미국 마음대로 결정하고 실행할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이 법안을 기초한 마크 팔머 프리덤하우스 부사장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진정한 악의 축 정권 분쇄하기:2025년까지 지구상의 마지막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쓴 전직 외교관으로, 2기 부시행정부 외교정책의 근간이 된 〈민주주의론〉의 저자인 이스라엘 강경우파 정치인 나탄 샤란스키 이주민담당 장관과 각별한 사이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당시 국무부 차관보로 재직하면서 1986년 소련 반체체인사이던 샤란스키의 교환협상에 직접 관여했고, 현재 그가 일하는 프리덤하우스는 최근 국무부로부터 197만달러를 지원받아 북한인권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 류재훈 기자 200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