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인터뷰> 정구복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장

"삼국사기는 동북공정 맞설 100만 대군의 위력"
"영어수업 능률 떨어뜨려, 원전독파가 더 중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요즘 변혁기를 거치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옛 간판을 내린 데 이어 대대적인 조직 개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구 기능 강화를 위한 연구소 중심 개편이 그 핵심이다.

하지만 국책기관인 연구원은 한편으로는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이 교육기관이라는 분류에는 수식어가 필요하다. 석ㆍ박사를 배출하는 대학원 기능만 있고, 분야가 소위 국학이라고 하는 한국학으로 한정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존재 기반 중 하나가 되는 교육기능을 총괄하고 있는 정구복(鄭求福. 62) 대학원장을 지난달 28일 낮 약 3시간 동안 경기 성남시 운중동 연구원 대학원장실에서 만났다. 그의 전공은 역사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사이다.

정 대학원장은 마침 지난달에는 '삼국사기의 현대적 이해'(서울대출판부)라는 단행본을 내기도 해서 그가 생각하는 역사학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장으로서의 연구원 교육기능 활성화 방안의 두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역사학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봤다. 사학사가 어떤 매력이 다른 역사학 분야에 비해 어떤 특장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답변은 이러했다.

"사학사학은 역사학의 역사학입니다. 역사학이 이룩되어 온 과정을 반추함으로써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반성할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역사학에서) 비판을 위한 기초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학사학은 특정 시대 특정 주제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를 통시적으로 봅니다."

그는 아울러 이러한 통시대적 안목을 결여한 작금 한국역사학의 고질 중 하나로 '역사의 아부, 혹은 역사의 어용화'를 거론했다.

"(지나치게 전공이 세분된) 우리 역사학자들이 자기가 공부하는 시대, 혹은 그의 연구주제와 관련한 모든 것을 최고라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전공자는 삼국시대가 최고라고 하고, 고려시대 전공자는 고려가 최고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당쟁만 해도 그것을 망국의 원인으로 꼽은 식민사관을 극복한다면서 그것을 정당정치라느니 하는 말로 합리화를 하고 있습니다. 당쟁이 망국의 원인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논리(정당정치)로 역사에 아부를 하고 있으며 그런 논리로 역사를 어용화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한국 역사학의 대안은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식 역사이론'의 개발을 강조했다.

"제가 보니까 이상하게도 우리 역사학은 역사이론의 대가가 눈에 잘 띄지 않아요. 저는 율곡 이이와 반계 유형원을 주목하는데, 반계는 '인간은 통치체제를 만들면서 인간에 대한 수탈이 강화됐다'는 마르크스와 비슷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율곡은 김시습 행장을 쓰면서 그 말미에 '수 백년 뒤에야 (김시습을) 알아줄 것이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안목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무비판적인 서구이론 도입을 강하게 비판했다.

"분명 서구이론이 우리에게 도움되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그 이론에 우리 역사를 끼워 맞추고 있습니다. 16세기 조선시대 전인민 3분의 1이 노비입니다. 이런 사회를 어느 이론으로 설명할까요? 마르크시즘? 웃기는 소리지요.

중국왕조는 기껏 평균수명이 200년 정도인데 한국은 고려와 조선이 각각 500년이고 신라는 1천년이나 됩니다. 도대체 어떤 역사이론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한반도는 반도라는) 반도사관을 이야기합니다. 반도라면 더 자주 왕조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사국 중에서 일본은 도요토미에서 도쿠가와로 정권이 넘어가고 중국 또한 명에서 청으로 바뀌었는데 정작 전쟁터인 조선왕조는 망하지 않고 300년이나 더 갔습니다. 도대체 이를 어떤 역사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서구이론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단적인 사례들이며 우리식 이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의 사학사 연구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고 근간 단행본 주제이기도 한 삼국사기로 화제를 옮겼다. 그는 당장 삼국사기를 사대주의 사서라고 간주하는 단재 신채호 이후 민족주의적 관점을 호되게 비판했다.

"삼국사기와 그 편찬책임자인 김부식을 중국에 아부나 떤 역사서나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일반인은 물론이고 역사학계도 팽배해 있습니다. 단재 선생이 그렇게 주장한 것은 당시 시대상황에서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나 그런 생각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니요?"

그러면서 정 원장은 사대주의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했다.

"사대주의라 그러는데 당시 시대상황에서 소위 사대(事大)주의 혹은 사대적 사고는 합리주의적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대를 통해 고려, 나아가 조선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대는 평화공존책입니다.

사대는 냉혹한 자기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중국이 거의 모든 면에서 고려나 조선보다 앞선 선진지역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는 자기네들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나름대로는 자기네가 다 천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려나 조선에서 중국을 보니깐 자기가 천하의 중심이 아니거든요. 이런 점에서 사대주의는 당시로는 혁신적인 자기 인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가치 중 하나로 최근의 동북공정과 관련해 설명하기도 했다.

"동북공정이요? 나는 삼국사기가 100만 대군에 맞서는 위력이 있는 사서로 봅니다. 중국역사서 어디를 보세요. 고구려를 자기네 본기로 편입해 다룬 역사서 있습니까? 삼국사기 지리지처럼 고구려 영역을 자기네 군현으로 넣은 중국 역사서 봤습니까? 삼국사기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저한 위정자 중심인 삼국사기와 같은 정사(正史)에서 탈피한 역사학을 강조하면서 그 대안 중 하나로 최근 역사학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고문서를 꼽았다.

"조선왕조실록을 아무리 뒤져봐야 논 한 마지기를 얼마에 사고 얼마에 팔았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성종실록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가뭄 때문에 5일장이 생겼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게 무슨 신주단지나 되는양 학계에서는 정말로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가뭄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다니요? 저는 이런 요상한 이론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종실록에 이런 기록이 왜 남았느냐? 5일장은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가뭄의 참상을 시찰하러 나간 관리가 마침 5일장을 찾아 그 기록을 남겼을 뿐입니다. 그 관리는 5일장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한국학대학원의 문제점과 활성화 방안 등으로 화제를 옮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대학원은 학비가 전액 면제됐습니다. 국고에서 지원했지요. 한데 IMF 때문에 (다른 대학원과 마찬가지로) 학비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학 정예요원 양성을 위한 특수대학원을, 1년에 겨우 40명을 선발하도록 되어 있는 대학원생을 국가가 지원해 주지 않으면 도대체 어떡하란 소립니까?

한국학을 빼 놓고 무엇을 세계화한단 말입니까? 세계를 향해 무엇을 한국상품이라고 내 놓을 것입니까? 예산 몇 푼 들지 않습니다. 당국이 결단만 하면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현행 문제점도 지적했다.

"현재 우리 대학원생 3분의 1정도인 70명이 외국인입니다. 학비는 전액 면제인데 기숙사 하고, 식대는 받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우리나라보다는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 출신입니다. 기숙사비나 식대는 물론이고 장학금 명목 등으로 오히려 그들을 지원해 줘야 합니다. 그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할지 누가 압니까? 그들을 친한파로 만들어야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칠레만 해도 우리 연구원에 그 나라 학생 한 명 없습니다."

일반시민에 다가 가기 위해 이번 학기부터 '한국학시민대학원'을 창설 운영하기로 했다. 나아가 한문서당인 '청계서원' 지원을 부산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 신설하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도 오는 4월 부산지원을 열 예정이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에 대해서는 냉혹한 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한문이 최근 중세라틴어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번체자를) 안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문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한국학을 하겠습니까? 한문 원전 해독 능력 외에도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회화 능력까지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영어 만능주의를 경계한다.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강의를 (교수들이) 진행했더니 외려 학습 능률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 가서는 그 나라 말로 학문을 하듯이 외국학생도 우리의 글(한문 포함)을 습득하고 해독해야 하며, 저는 그것을 외국학생들에게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3시간 이상 자지 마라고 합니다."

이런 그를 연구원에서는 '3시간 교수', '사관학교 교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는 1969년 12월부터 72년 12월까지 실제 육사 교수를 지냈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