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교육 이렇게…] “이렇게 홀대하다간 고대사는 사라질 것”

“전혀 연관성 없는 국사 등 11과목이 사회탐구란 영역에 묶이고 그 중 4과목을 선택케 하는 기괴한 교과구조가 우리 역사교육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4∼5년 뒤 아이들이 고구려 발해를 기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김육훈(45·서울 상계고 교사) 회장은 3일 기자와 만나 고교 교육 현장의 국사 홀대 실태를 설명하며 “국사 과목이 지리 사회 윤리 등과 인기과목 경쟁을 벌여 이겨야 가르칠 수 있도록 돼 있는 구조는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말했다. 김 교사가 정기적인 역사교사 모임에서 수집한 국사 교육 파행 사례는 충격적이다.

수능이 석달쯤 남은 지난해 8월 고3 제자 몇명과 대화하던 김 교사에게 상위권 성적인 한 학생이 “선생님 을사조약이 뭐예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 학생은 국사를 선택하지 않아 고1 때 국사 수업을 들은 뒤 역사책을 들춰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 모 고교에선 2003년 국사 교사가 담임이던 고2 학급에서 국사 과목 선택자가 1명도 없었다. 7차교육과정은 고1 때 국사를 주당 2시간씩 의무적으로 배우지만 2학년부터는 사회탐구 11개 과목 중 선택할 경우만 수업을 듣는다. 이 담임교사는 모임에서 “1학년 국사 성적이 정말 좋았던 학생이 고2 때 분위기에 휩쓸려 국사 수업을 듣지 않은 바람에 고3 때 ‘다 잊어먹었다’며 결국 국사를 포기하는 경우를 봤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현재 고1이 1주일에 2번 국사 수업을 하는데 1시간에 8쪽 이상 진도를 나가도 수능 범위인 조선후기까지 가르치기에 너무 빠듯하다”고 말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지난해 9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함께 역사교과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골자로 역사교육 강화안을 제시했다. 김 교사는 “역사,지리를 사회탐구 영역에서 분리하고 비슷한 성격의 윤리,사회 교과를 합치는 등 교육과정 조정이 시급한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근현대사가 국사에 포함되지 않고 고2,3학년 선택과목으로 지정돼 이과 계열이나 실업계 학생들은 거의 배우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국민일보 / 강준구 기자 200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