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삼국사기, 그리고 동북공정을 생각함

우리 고대사는 숱한 의혹의 역사다. 그 중심에 고구려가 있다. 드러난 것만으로도 볼 때 한민족 최강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역사 강탈이 시작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천하를 호령했던 광개토대왕의 활약상이 적힌 비가 발견된 것도 겨우 130년 전이고 한반도 중원을 누렸던 고구려의 경계를 일깨우는 중원고구려비가 발견된 것도 고작 25여 년 전 일이다. 그러고 나서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영토가 그려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보다 남아 있는 고대사에 대한 서책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가 유일하다시피한데, 그 때문에 실증사학자들은 '삼국사기'를 신앙처럼 붙들고 산다. 한 개인이 기록한 서책 하나에 고대사 전체의 운명을 걸고 있는 게 딱한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이다. 그 서책 하나하나의 문구에 기대 천년이 지난 지금도 후손들을 교육시키고 있는 우리 학자들의 고민은 또 왜 없겠는가?

그러나 도대체 '삼국사기'가 어떤 책인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고(물론 고구려는 내분으로 망했다) 남북조 시대(결코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다)를 연 신라가 역사를 자기중심으로 기술한 책자에 불과하다.

삼국 중 가장 왜소했던 신라를 중심에 두고 고대사를 쓰다 보니 당시 남조 신라보다 강성했던 북조 대진(大震:발해, 발해라는 호칭은 3046년 당나라 현종으로부터 발해군왕으로 작명을 받게 된 데서부터 비롯됨)의 역사를 완전히 말살시켜버린 것은 물론 이 땅에 수백 년 당당하게 군림했던 가야 역사는 유령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김부식이었기에 고구려를 침입한 수나라군 35만 명을 전멸시켜 쫓아낸 고구려 태왕이 오히려 "두려운 마음이 들어 '요동분토(遼東糞土 요동의 똥 같은 나라라는 뜻)의 신하 아무개'라 적은 사죄 표문을 올렸다"고 하고 고구려 연개소문의 성씨인 연(淵)자가 당나라를 세운 이연李淵의 연자와 같다 하여 '천泉개소문'이라 기록하는 말장난을 일삼았다.

또 그런 그이기에 당나라와 신라에게는 눈에 가시 같았을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을 포악무도해서 나라를 망친 간신배로 그려낸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삼국사기' 기술의 문제점이 눈 밝은 이들에 의해 숱하게 지적되면서도 필경엔 정말 '싫증'나는 '실증'주의에 막혀 한 자도 바로잡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무엇보다 문제는 중국의 고구려사 강탈이 눈앞에 이른 지금에도 우리는 고구려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명확히 모른 채 감상적 대응만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 중국에서 벌이는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의 속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학자적인 양심까지 접어두고 총력으로 고구려사 강탈에 나선 모양새다.

동북공정에 맞서 모인 '고구려 연구재단'에서 펴내고 있는 고구려사 자료집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당태종은 고구려 정벌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일거에 소멸하려고 하였다. 태종이 한탄한 '만약 위징이 있었다면'은 이번 정벌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고 이번 정벌의 손실이 없었다는 말이다. 태종이 탄식한 것은 만약 위징이 있었다면 이번 정벌에서 2천여 명이 죽지 않았을 것이고 전마도 10에 7,8이 손실되지 않았을 것이며 안시성의 전투도 성공하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수당 시대의 고구려사」 부분, <중국인이 쓴 고구려사>

고구려에 정통한 학자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금방 알겠지만 일반인들을 위해 배경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2978년(서기 645년) 3월, 당태종 이세민은 많은 조정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려하(지금의 요하. 당시는 고구려의 강이라는 뜻으로 구려하로 불렸다)를 건너 고구려를 침범한다. 그때 그가 이끌고 온 군사들의 수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삼국사기'는 10만,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30만 정도로 본다(앞서 수 양견은 35만, 그 아들 양광은 113만을 이끌고 고구려 땅을 침범했다가 열에 하나도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최고의 전략가였던 병부상서 이정을 비롯하여 경험 많은 노장 책략가는 단 한 사람도 이세민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만큼 고구려 도전이 무모해보였던 것이다.

그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낙양에 이른 이세민은 전 의주자사 정원모에게 마지막으로 고구려 침략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구한다. 그의 대답도 절대 불가였다. 하는 수 없이 이세민은 땅에 떨어져 있는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목적으로 자신들이 고구려를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다섯 가지를 들어 격문을 내건다.

그 첫 번째가, 많은 수로 적은 수를 치는 것이다, 였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많은 수는 얼마나 될까? 앞서 말한 대로 '삼국사기'는 10만, KBS 역사스페셜은 30만 정도로 보고 있지만, 당시 여동(만주)을 방어하던 별동대 여동군의 수만도 15만이었으니 우선 '삼국사기'의 10만이라는 기록은 어린애도 웃을 일이다.

이후 안시성을 깨뜨리기 위해 이세민은 50만을 동원해 흙산을 쌓는다는 기록이 있는데, 갑자기 늘어난 수는 앞선 싸움에서 사로잡은 고구려 군민들 때문이었다고 한다(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세민은 안시성에서 대패하고 쫓겨 간다(여기서도 김부식은 이세민의 자존심을 위해, 그가 쫓겨 가면서도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뛰어난 방비력을 칭찬하며 비단 백 필을 보냈다고 적어놓는 몰염치를 보인다).

전장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당태종은 '위징만 살아 있었어도 내게 이번 길이 있었겠는가?' 후회하며 탄식했다.

이 기록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정설이었다. 그런데 그조차 저들은 이제 자기 식으로 고쳐 쓰고 있는 것이다. 이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저들의 말이 기록으로 남은 역사적 사실로 둔갑할지 모른다.

다소 장황하게 고구려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이즈음에 꼭 필요한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함이었다. 그것의 제목은 <고구려>로 원고지 6300매 분량으로 쓰인 대하소설이다.

중원고구려비를 최초로 발굴 확인한 사학계의 원로 정영호 박사도 감탄해 마지 않았지만 나는 대하소설, 역사소설을 이렇게 대중적으로 쓸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탄해마지 않았다.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은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전쟁이었다. 기록으로 남은 침략군 수나라의 병력만 113만이었으니 거기에 맞서 싸운 고구려군을 친다면 200만 대군이 맞붙은 전쟁이었다.

작가는 소설 속에 그 싸움 장면만 원고지 2000매가 넘는 분량에 그려 넣는다. 그 집요함은 저자가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양만춘이 되고 수나라의 양견, 우문술이 되지 않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엄청난 전투장면을 그리면서도 장수의 몸짓 하나하나에도 생명을 불어넣은 솜씨는 가히 역사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부식이 요동의 똥 같은 나라 고구려의 간신배로 처박아버린 연개소문을 무덤 속에서 끌어내 포효하게 만든 것은 소설적 형식이 아니면 불가능했겠지만 거기엔 생생히 호흡하는 한 위대한 영웅의 실체가 가감 없이 느껴진다. 나아가 당나라에 빌붙어 이웃한 한 핏줄 국가를 멸망시키러 온 신라 김유신의 5만 군사에 맞서 5천 결사대로 맞선 백제 계백의 정신은 또한 이 소설이 왜 문학적 성취까지 이루고 있나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나는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의 삼국지를 백 년 넘게 팔고 있고, 그걸 이 나라 최고의 작가라는 사람들이 자랑삼아 떠들고 사는 세월이다. 이 책이 나가면 부끄러워할 사람들 많을 것이다. 이만한 소설은 100년 앞에도 없었고 100년 후에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나는 이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요즈음 내 관심은 이 대하소설 <고구려>의 존재를 어떻게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가에 있다. <고구려>와의 만남은 내게 한 명의 출판인으로서 갖게 되는 책 한 권에 대한 의미 이상의 무엇이 있다. 조금 지나치게 말하자면 내 겨레와의 만남이었고 자부심과의 만남이었다.

만약 <고구려>를 읽게 되는 독자가 있다면 우선은, '정말 고구려가 이렇게 대단한 나라였어? 내가 알고 있는 역사는 이게 아닌데, 설마 우리 민족이 이렇게 위대했을라구……' 따위 말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판단은 유보해두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대로 소설을 즐기고 우리를 돌아보자. 아마도 이미 고착화된 역사교육으로 단련된 이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지식 역시 앞서 말한 삼국사기적 기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거의 그럴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십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고구려'에 투자한 사람이다. 많은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끌어갈 수 있는 사람만이 글을 쉽게 쓸 수 있다.

대하소설 <고구려>는 중학생 수준만 되어도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길 만큼 쉽게 쓰였다. 그만큼 저자는 고구려에 대해, 우리와 수·당나라와의 관계에 대해, 우리의 고대사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완전히 자기화해서 거의 전략적(?)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소설이 우리 민족 최강의 역사를 구현했던 고구려를 이해하고 지금 시점에 중국이 왜 고구려에 집착하고 있으며, 우리는 왜 거기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하나의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오마이뉴스 / 이대식 기자 2005-3-3)

이대식 기자는 대하소설 '고구려'를 낸 새움출판사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