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보니] 옛 고구려 영광 되살릴 길 없나

한반도는 북한 핵을 고리로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하루가 다르게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일본은 날만 새면 요코다 메구미의 ‘가짜 유골’ 파문 속에서 북한 경제제재를 거론하고 중국은 실력을 기를 때까지 야망을 감추자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거쳐 바야흐로 첨단 무기로 무장한 ‘과기강군’(科技强軍)을 외치기 시작했다.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의 핵무장 해체를 목표로 서서히 북한을 옥죄고 있다.

기력이 쇠진한 북한은 지난 설에 보름치의 식량과 도토리 술, 맥주·탕과류 각 1kg을 배급해 줄 정도로 경제 사정이 조금씩 호전돼 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 국력으로는 아무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해도 도도히 밀려오는 주변국들의 높은 파고를 무사히 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와중에 평양에서는 연초에 모종의 정변이 일어나 정권교체 작업이 은밀히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미국은 일본엔 대북 경제제재 때 좀더 긴밀하게 협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중국엔 더 강력하게 북한에 핵 포기 압력을 행사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한국엔 남북경협의 속도조절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김정일 이후 평양의 권력구도에서 서방의 지분을 최대한 늘려 보려는 치밀한 포석인 듯하다.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지난 2일 미 의회에서 행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이다.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일체의 비난을 삼간 채 “북한이 핵 야망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우리는 아시아 정부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딱 한번 말하는 데 그쳤다. 짧고도 묘한 말이다.

그러나 북한은 설 다음날인 10일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과 핵무기 보유를 공식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강경파로 알려진 존 볼튼 미 국무부 차관은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는 것은 핵 전력 증강이 진전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과연 2005년 새해 조국 한반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함석헌 선생은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한반도는 세 면에서 다가드는 세력에 두루 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서쪽의 중국과 북쪽의 만주와 동쪽의 일본이다. 이 위치는 다이너마이트같이 능동적인 힘을 가지는 자가 서면 뒤흔드는 중심이요, 호령하는 사령탑이요, 다스리는 서울일 수가 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억세지 못한 자가 그 자리에 선다면 그 때는 수난의 골목이요, 압박의 틈바구니다. 우리는 불행히 그 뒤의 것이 되었다”고 일찍이 갈파한 바 있다.

이제 100년 전처럼 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한반도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우리 민족이 그때처럼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질 만큼 성장했고 500만명의 동포들이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 나름대로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여기서 우리들은 한반도를 통일하고 드넓은 만주 벌판과 동몽골에 이르기까지 옛 고구려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한을 품고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가고 말 것인가. 잠이 안 온다.

<더글라스 신 재미목사·북한민주화운동가>

(세계일보 2005-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