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왜곡은 중국공산당 노선의 자가당착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불거진지 7개월이 지났다. 채 1년도 안된 시점에 벌써 우리 내부에 고구려사를 지키려는 의지가 이완되고 있는 것 같다.

한번 끓어 올랐다가 곧장 식어가는 우리의 문화적 특성 때문이 아닌지 걱정된다. 임시 국회가 열렸지만 작년에 여야가 합의한 고구려사왜곡대책특위는 의사일정이 안 잡혀 있다.

고구려사 왜곡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다. 역사기록과 문명사적 진실의 문제다. 우리와 중국 국민, 그리고 동북아 지역 국민들의 역사 인식과 교육의 문제다.

따라서 역사문제를 단기간에 불과 몇 번의 협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내세워서 올바른 역사를 공유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민족사를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안이하게 대응하거나 빨리 잊어서는 안된다.

고구려사 대책 세미나 "정부-국회 이래선 안된다"

국회가 방학 중이던 지난 1월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왔다.

국회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회가 주최하고 학계의 고구려연구회가 주관한 이 세미나는 열기가 대단했다. 참석자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한명도 빠져나가지 않고 지켜보았다.

국회에서는 주최측 및 패널로 열린우리당의 김재홍 노웅래 의원과 한나라당의 김충환 의원, 그리고 고구려사왜곡대책 특위 위원인 김태년 신학용 김영숙 의원이 참석했다. 외교통상부와 교육부의 관계관이 패널로 참석해서 토론도 하고 질문에 답변도 했다. 학계에서는 이날 주제발표자인 서길수(서경대) 교수와 고구려연구회장인 서영수(단국대) 교수 등이 함께 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 2월2일까지 고구려유적 전시회가 이어졌다. 조배숙, 김태년, 유기홍 의원 등이 전시회를 참관하고 학계 인사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나는 "국회가 열리면 고구려사왜곡 대책을 다시 한번 크게 외쳐 달라"는 세미나 참석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 글을 쓴다. 국회가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하고도 아직 활동을 안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힐난이 쏟아졌다. 나도 그 위원이지만 답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서 난감한 처지였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그것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노선과도 어긋나는 자가당착이다.

중국 측은 고구려에 대해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에 의한 지방정권이라고 했다. 이는 곧 중심부와 주변부, 왕도와 변방이라는 봉건적 주종관계를 강요하려는 정치노선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구시대적인 열강주의 역사관의 전형이다.

중국 4세대 지도자들의 국수주의적 실용노선

그러나 마오쩌둥이 설계한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노선은 지구촌의 변방에 속하는 제3세계를 중시하고 소수민족의 주권과 민족자결주의를 존중했다. 이른바 제1세계 열강들에 의한 약소국 지배나 패권주의를 배척했다.

마오가 죽은 뒤 중국 공산당에 대한 지도권을 계승한 덩샤오핑도, 또 덩샤오핑에 의한 실용주의 노선의 후계자인 장쩌민도 이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중국 공산당의 주요 정치노선으로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 측이 이른바 동북공정을 시행하면서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우기니 이는 자신들의 당 노선에도 맞지 않는 열강주의적 역사관이 아닐 수 없다. 그 책임은 중국 정치체제가 갖는 속성상 지금의 지도자들에게 돌아간다.

지금의 중국 지도자들은 제1세대인 마오쩌둥 이후 제4세대라 불린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칭린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특성은 후진타오가 수리공정, 원자바오가 지질광산, 우방궈가 전자공학 등 모두가 과학기술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사상과 이론 투쟁 보다는 실무 능력을 인정받고 발탁된 테크노크라트들이다.

덩샤오핑과 장쩌민의 실용주의 노선 위에서 후계권력자들이 모두 그렇게 선발된 것이다. 그러나 덩과 장의 실용주의 보다 훨씬 좁은 의미의 천박한 정치노선과 철학이 중국 공산당을 지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

마치 자본주의가 타락해서 천민 자본주의가 되듯이 중국의 실용적 사회주의에서 합리성과 양식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 공산당의 맹목적 애국주의와 우경화에 다름 아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

그럴 경우 중국 당국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식민지배 정당화에 대해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묻고 싶다. 나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동질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평화번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제는 먼저 이 지역 국민들간에 역사인식을 공유하지 않는 한 성취하기 불가능하다.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 할 공적이 바로 국수주의적 경향이다.

중국에 정치적 민주화와 언론 자유가 확대되지 않으면 그 정치철학의 타락과 국수주의화를 방지하기 어렵다. 그럴 경우 주변국들과 영토 분쟁 뿐아니라 역사왜곡으로 인한 갈등도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이는 동북아 평화번영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일본 식민지배 시대에도 그 진보적 지식인과 양심 세력은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지했다. 지금도 중국의 양식 있는 인사들은 고구려사 왜곡에 반대할 것이다. 다만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낼 수 없을 뿐이다.

고구려사 왜곡이 터졌지만 우리가 중국 지도층 전체를 비판하고 적대시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중 역사 왜곡을 주도한 국수주의자들을 배척하고 양식 있는 인사들은 가려서 지지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분별력 있는 자세다.

고구려와 발해, 현재는 중국 땅이지만 그 역사는 우리 것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지만 그 활동무대였던 땅은 지금 중국 영토로 되어 있다는 것이 과거와 현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역사인식 위에서만 한국과 중국의 미래가 공동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발해도 마찬가지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유민이 들어가 건설한 발해는 분명 우리의 역사다.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는 서기 699년부터 926년까지 228년 동안 만주지방을 지배한 강성한 나라였다. 그 당시 우리 역사는 남쪽의 통일신라 뿐아니라 북방에 발해라는 '남북 왕조시대'로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중국 당국은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동북아의 역사에 대해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그들의 눈에 한낱 약소국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엄연히 독자적인 문화, 역사, 경제시장과 정치체제를 발전시켜 온 배달겨레의 정체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며 한류 문화의 주인공인 대한민국을 견제하려는 것은 옳지 않으려니와 가능하지도 않다. 중국 당국은 2003년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중-일 경제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진정한 동반자 의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 상호존중과 호혜주의에 바탕한 역사인식을 회복하기를 촉구한다.

(오마이뉴스 / 김재홍 기자 2005-2-14)

김재홍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 국회 정치컴연구회 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