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바로보기] 38. 윷놀이의 유래와 의미

우리나라의 옛 사람들은 설을 앞뒤로 하여 겨울 내내 윷놀이를 즐긴다.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쉽게 할 수 있어 ‘국민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윷놀이는 어디서 유래됐고 윷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윷놀이는 한자로 척사(擲柶) 또는 사희(柶戱)라 한다. 또 윷을 한자로는 나무 네 조각이란 뜻을 따서 사(柶)로 적었다. 하지만 윷놀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고유의 놀이다. 중국에도 저포(樗蒲), 격양희(擊壤戱)가 있고 만주와 몽골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으나 그 방식도 다르고 널리 유행하지도 않았다 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윷놀이가 시작되었을까?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고려의 유속으로 본다”고 했으나 최남선은 그 기원을 신라시대 이전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신채호는 그 기원을 고대 부여에 두면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부여의 지배체제는 제가(諸加)인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저加) 구가(狗加)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곧 각기 말, 소, 돼지, 개를 상징으로 하는 집단이 각기 한 구역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이들 제가는 각기 사방을 경계 지은 사출도(四出道)를 맡았다. 사출도는 전시체제에서 군사조직의 출진도(出陣圖) 모형이라고 한다.

신채호 “부여국서 시작된 고유놀이”

윷의 도는 돼지의 저가, 개는 구가, 윷은 우가, 모는 마가를 표시하고 있으나 걸은 의문으로 남겨둔다고 했다. 걸은 임금자리인 기내(畿內)의 벼슬아치(양을 상징)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부여가 수렵시대를 지나고 농사와 목축을 하는 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그럴 듯한 해석으로 부여에서 기원한 윷놀이가 차츰 고구려, 백제, 신라로 전해져 유행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윷은 나무 네 쪽으로 만든다. 앞으로 거쳐야 할 밭은 29개이다. 나무쪽을 던져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숫자에 따라 한 발을 가기도 하고 다섯 발을 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정해진 코스에 따라 먼저 나오면 이긴다.

이 자리에서 굳이 놀이방식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윷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명이 필요하다. 윷판은 둥근 원 안에 십자를 그리고 밭 29개를 그려놓았다. 가운데 방을 중심으로 배치한 28개마다 우리말의 이름을 붙였다. 곧 입구를 도, 길이 갈라지는 곳을 모, 뒷모, 찌모라 부르며 출구를 참먹이라 했다. 윷판을 보면 방이 가장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중심 축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런 윷판에 어느 때부터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밭마다 하늘의 별자리인 28수(宿)를 표했다. 중심인 방을 추(樞)라 했다. 추는 ‘가운데’ 또는 밑동과 지도리라는 뜻이며 북두칠성의 첫 별자리 이름이기도 하다.

북두칠성은 임금의 자리이며 추성은 임금별로 친다. 북두칠성은 자리를 옮기지 않아 고정불변이다. 그리하여 뭇 별이 임금별을 싸고돈다. 이런 상징성을 살려 임금은 북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쪽에서 바라보는 신하를 마주한다. 경복궁도 임금자리를 북쪽에 배치했다. 임금이 어느 곳을 가던 이런 자리 배치는 변함이 없었다.

조선 중기에 살았던 문인 김문표(金文豹)는 사도설(柶圖說)에서 명쾌하게 해석을 달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윷판의 전체 주변이 둥근 것은 하늘, 중심에는 십자를 그려 모남을 그린 것은 땅을 나타낸다고 했다. 곧 천원지방(天元地方)의 천문사상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의 해석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가운데 있는 별은 추성이요 옆으로 벌려 있는 별은 28수이다. 해의 진행은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가서 가운데를 거쳐 다시 북쪽으로 나오는데 동지의 해가 짧음을 나타낸다.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북쪽으로 나옴은 해가 고름을 나타낸다.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과 남쪽을 거쳐 북쪽으로 나옴은 추분의 방이 고름을 나타낸다. 북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을 거쳐 남쪽과 서쪽을 지나고 다시 북쪽으로 나옴은 하지의 해가 길음을 나타낸다.

종9품~영의정 관직 적은 윷판도

그는 말발의 진행이 해와 절기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곧 하늘의 별과 해, 이에 따라 땅의 계절 변화를 적용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원리에 따라 28수의 별자리를 배치했다. 그러므로 28수는 옛 기록에 적혀 있는 순서대로만 배치하지 않았다. 이 설명에서는 윷판의 입구를 북쪽의 방향에서 설정해 풀이했으나 여느 사람들은 남쪽(아랫쪽)을 출발점으로 삼아 놀이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28수를 그린 윷판을 가지고 놀이를 벌이면 자연스레 별자리 이름을 익히게 되는 교육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한편 별자리를 배치한 윷판과는 다른 윷판도 있었다. 곧 종정도(從政圖) 또는 승경도(陞卿圖)이다. 이 도판은 큼직한 종이에 종9품부터 영의정까지 내직이든 외직이든 모든 관직의 이름을 써놓았다. 곧 참봉 만호 같은 하위직에서 판서 대제학 병사 수사 등 고위직을 망라하여 문관 무관을 구별치 않고 적은 것이다.

처음 출발할 때 도나 개가 나오면 좋지 않은 벼슬을 받게 되며 윷이나 모가 나오면 좋은 자리를 받는다. 그러나 벼슬살이를 계속하는 동안 좋은 말밭을 걷게 되면 고속 승진이 보장되어 현관의 자리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나쁜 말밭을 걷게 되면 유배를 가기도 하고 파직을 당하기도 하면서 낙백의 길을 걷게 된다. 또 낮은 등급으로 강등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약을 받은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日帝 수난 거쳐 민족놀이로 계승

이는 본디 중국 쌍륙놀이를 조선 초기 하륜이 우리의 관직에 맞게 변형시켰다고 한다. 관료사회의 규정과 특성을 치밀한 구도로 짜서 만들었다. 물론 벼슬을 중시하는 관료사회의 산물이기는 하나 윷판의 천문사상을 인문정신으로 바꾼 한 모델이 될 것이다. 청소년들은 종정도를 이용해 윷놀이를 벌이면서 모든 관직을 외우게 되고 관직생활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수양의 정신을 되새기게 된다. 필자도 어릴 적에 종정도를 이용해 윷놀이를 한 탓으로 모든 관직을 자연스럽게 쉽게 외울 수 있었다.

윷놀이가 한 때 수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일제시기 ‘조선의 명절’과 민족놀이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윷놀이도 압제를 받았다. 하지만 해방 뒤 다시 살아나 농촌 마을과 도시를 기리지 않고 곳곳에서 마을 대항으로 척사대회를 벌였다. 또 두 사람을 단위로 놀이를 벌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패를 갈라 놀이를 할 수도 있어서 그 겨루기 범위가 넓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부터 크게 유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윷놀이는 민중의 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 64패와 연계 윷패로 길흉 점쳐

윷점이 성행했다.

윷놀이는 단순한 승부를 겨루는 유희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농경사회에서 농사나 신수를 점치는 예언적 의미로 변용되기도 했다. 그 방법은 여러가지였다. 먼저 농사와 관련지어 치는 점의 방법을 알아보자. 한 동네라도 윗마을 농민은 화전농이요, 아랫마을 농민은 수전농(水田農)일 경우가 많다. 화전농과 수전농으로 패를 갈라 윷놀이를 벌인다. 이를 각기 산농(山農) 수향(水鄕)이라 부른다.

산농이 이길 경우, 그해에 홍수가 져서 수향의 수확이 적을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산농의 농사짓기가 유리할 것으로 여겼다. 산농들은 이겼다고 하여 술과 음식을 내서 즐긴다. 돌팔매질하는 따위로 벌이는 동전(洞戰)과는 달리 친목을 도모하는 터가 되었다.

이와 달리 윷가락을 던져서 주역의 괘를 뽑아 신상에 관련된 일을 점치는 방법이 있었다. 이 점은 셋의 수를 기본으로 한다. 윷을 던져 도는 1, 개는 2, 걸은 3, 윷과 모는 4로 정했다. 세 번 모두 도가 나오면 그 숫자는 111이 되며 도, 개, 걸이 나오면 123이 되며, 걸이 세번 나오면 333이 된다. 또 모가 세번 나오면 444가 된다.

주역은 점서로 활용되었는데 8괘를 제곱해서 64괘를 만든다. 이 64괘가 주역의 기본을 이루며 그 괘마다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리하여 윷점에서도 64괘에 따라 64가지 사항을 설정하고 간단한 점사를 적어 놓았다. 그 점사를 보자. 111괘의 경우, 아이가 자애로운 어머니를 만난다(兒見慈母)이다. 좋은 운수를 뜻한다. 123괘는 깜깜한 밤에 촛불을 얻는다(昏夜得燭)이다. 곤경에 처했다가 좋은 일을 만난다는 뜻이다. 333괘는 나비가 꽃을 얻는다(胡蝶得花)이다. 제철을 만난다는 뜻이다. 444괘의 경우, 형마다 아우를 얻는다(兄兄得弟)이다. 좋은 동조자를 얻는다는 뜻이다.

위의 예시는 모두 좋은 운수를 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쁜 조짐을 중간에 섞어 놓았다. 112괘의 경우, 쥐가 곳간에 들어간다(鼠入倉中)로 재산이 축날 운수이다. (반대로 먹거리가 풍부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213괘는 활이 깃털 화살을 잃는다(弓失羽箭)이다. 쓸모 없는 일이 벌어진다. 또 442괘는 고기가 낚시바늘을 삼켜버린다(魚呑釣鉤)이다. 아주 곤궁한 일을 만나게 되는 것 등이다.

윷점은 토정비결과 비슷한 점사를 깔아놓았다. 하지만 보는 방법은 더 간단하다. 토정비결에 따라 1년 신상을 점칠 적에 나쁜 운수가 나오면 조심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좋은 운수가 나오면 한번 기분 좋게 웃는다. 윷점도 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의 길흉을 1년 단위로 예언해 사람들의 삶에 재미를 준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이화 / 역사학자〉

(경향신문 2005-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