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인들이 세운 '대진국'을 아는가

이번 설날에는 뜻깊은 일이 하나 있다. 잊혀진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되찾기 위해 뜻을 같이한 방의천대장 이하 3명의 용감한 분들이 드디어 동해에 발해뗏목을 띄우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과 교류가 활발했던 대진국의 대일 교역로를 재현해 냄과 동시에 나아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생생한 대진국의 역사를 되살아 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미 작년 한해를 동북공정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우리역사에 대한 도전을 경험한지라 이번 발해뗏목탐사가 가지는 의의는 특별한 것이다. 물론 심도있는 학술적 연구성과도 중요하겠지만 대다수 일반인들에겐 이와같은 역사적 이벤트가 더 빠르게 와 닿는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더군다나 발해뗏목탐사는 과거 대진국과 일본간의 동해를 통한 교역로를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실제로 재현하여 이를 현재에 증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아무쪼록 이번 탐사가 꼭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대진국(大震國)에 대한 몇가지 짫막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자.

한 방송사에서 기획한 역사드라마 '해신'을 보면 재미있는 설정이 눈에 띈다. 이도형 상단과 염문이란 사내가 나오는데 이들의 배경이 자못 흥미롭다. 염문의 막사를 장식한 문양은 우리가 잘 아는 고구려 해뚫음무늬속의 삼족오이고 이도형의 문장은 일본에서 흔한 태풍형 소용돌이 문양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고구려의 유민계통임을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시 산동일대를 점유하고 당조정과 당당히 대결했던 이사도 진영과의 관계속에서나 대진국과 평로치청사이의 말(馬)교역에 관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분명해지지만 원래 계통이란 함축적인 상징이나 기호를 통해서 더 잘 드러나기 때문에 필자는 문양에 더 주목하는 편이다.

아무튼 사극에서의 이와같은 설정은 한국사회의 고착적인 역사인식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고구려와 백제가 역사속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동북아시아가 오로지 당(唐)과 신라(新羅)만의 무대가 아니었음이 이제야 세간에 회자되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는데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주 미흡하다. 바로 대진국 때문이다. 당시 동북아시아정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진국을 놓쳐서는 안된다.

기실 대진국이야말로 고구려유민의 혁혁한 활동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다고 하겠다. 비록 정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서에 나오는 기록이지만 이미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걸걸중상)은 진(桭)과 후고구려란 이름으로 30여년간 통치를 했고 대진국이 그 뒤를 이어서 200여년을 존속하니 이 보다 더 명명백백한 고구려유민의 역사가 어디있단 말인가.

즉 평로치청의 이정기장군 일가나 고선지장군을 언급하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대진국이 선행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더군다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오대회요(五代會要), 발해전(渤海傳)과 같은 정사들도 대진국이 고구려유민의 나라였음을 말하고 있다.

윗 사서들에 근거하면 대진국을 세운 사람들은 크게 영주에서 이동한 집단, 천문령 전투에 참가한 집단 그리고 건국 직후에 참여한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각 집단들은 고구려 계통의 대조영 집단과 대중상 집단 그리고 말갈계인 걸사비우 집단으로 다시 나눌 수 있는데 당(唐)에 대항한 건국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중국의 사서에 근거하더라도 대진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고구려의 유민들과 말갈인들이 주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중국학자들과 한국학자들 일부는 말갈인과 고구려인의 구성비등을 가지고 대진국의 성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고구려란 나라의 실체를 잘못 이해한 것에 연유한다.

고구려가 단군조선을 이은 연합국가형태의 나라였음을 간과한 것이다.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계통, 즉 세 나라를 관통하는 '원형반복'의 이어짐을 이해한다면 위와같은 미혹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단군조선의 통치원형이 부여를 거쳐 고구려가 가장 강성했을 때 다시 부활했던 것으로 파악한다면 응당 고구려는 제민족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연합국가임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거기에 말갈인도 그 한 부분을 차지했음은 당연하다. 아울러 삼국사기에 번갈아 등장하는 고구려군과 말갈군의 비밀도 저절로 해결되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그러하니 대진국의 건국시 고구려인과 말갈인이 함께 참여함은 더더욱 필연이 아니었겠는가 말이다. 사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부여계와 말갈계라고 해야하지 않나 싶다.

아무튼 대진국은 고구려유민의 활동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900년을 실존했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려 그 구성원들이 몇몇 장군들만 빼고 안개 사라지듯 흩어져 버렸다는 웃지못할 역사코메디가 종을 고할 것이다. 더해서 사서에 이름만 다르게 표현될뿐 실제로는 고구려와 대진국을 구성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어떻게 연장선상에서 끊어짐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그 '원형'을 간직하면서도 변화되어 나가는가 하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며 비로소 이를 근거로 당시 동북아시아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왕성이 함락되어 한쪽은 대진국으로 한쪽은 일본으로 바뀌었지만 동북아시아는 여전히 고구려, 백제, 신라, 당이라고 하는 네개의 '기억체'들이 약간 변형된 형태로 상당기간 존재했음을 놓쳐서는 않될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민족의 명절인 설날에 옛 대진국의 고토에서 선조들의 기상을 실은 뗏목 하나가 출항하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뜻 깊은 일이 앞으로 잊혀지고 덮어지고 뒤틀려진 우리 역사를 복원하는 한 계기로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브레이크뉴스 / 신상윤 기자 20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