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지도자는 국민과 보폭 맞춰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도자는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며 국민과 함께 보폭을 맞춰야 한다’며 지도층에 따끔한 충고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2일 ‘동아시아와 젊은 리더십’ 주제의 연세대 초청 특별강연에서 “지도자가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지도자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국민의 손을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자는 국민보다 반발 정도 앞서면서 국민이 따라오지 않으면 설득해야지 손을 놓고 혼자 가버리면 국민에게서 유리된다”고 경고했다.

그의 올해 첫 외부 강연인 이날 특강은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와 방학 중임에도 교직원, 학생 등 600여명이 몰려 열띤 분위기였다. 부인 이희호씨가 바라보는 가운데 1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김 전 대통령은 약간 피곤하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따금 학생들에게 농담을 던져 폭소를 자아냈으며, 감기에 걸렸다면서 몇 차례 기침을 하기도 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미간 일괄타결이 관건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지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 국제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만 이룰 수 있다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을 포기하라고 말만 하지 말고 무엇을 해줄지 카드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부시 정부는 강·온파 대립으로 지난 4년을 허송세월하며 북한에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니 북한이 미국을 불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시아공동체의 구현을 주장하며 이를 위한 지도자의 선구적 자세를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21세기는 세계화와 지역화가 병행해서 진행되고 있다”며 “올해 12월 말레이시아에서 제1회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려 동아시아의 공동체 형성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며, 이는 참으로 역사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특히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철학과 이상을 간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냉철하고 세심한 계산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고 실천해나가는 실사구시의 자세가 필요하다”며 “이상에 치우치면 현실과 유리된 공허로 흐르게 되고, 현실에 치우치면 타락과 실패의 길로 가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만 갖고 현실을 무시하고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라오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며 “지도자는 백성을 하늘같이 생각하고 또 그 뜻을 받들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군사독재 시절 자신들은 나름대로 애국심으로 나라를 구한다고 했으나, 이상과 도덕적인 큰 기준을 포기하고 현실에서 경제 발전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한 것이 본의 아니게 이런저런 비난을 받고 실패도 하게 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세계일보 / 김청중 기자 20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