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을 여는 사람들]''오지중 오지'' 위구르의 韓商들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의 투루판(吐魯番)과 우루무치(烏魯木齊)를 넘어서면 ‘서역’이 시작된다. 이곳은 풀 한 포기 제대로 살아 남기 힘든 불모의 땅이다. 그러나 수천년 시간의 벽을 넘어 이곳을 지나는 실크로드(비단길)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대상들이 수송수단으로 앞세웠던 낙타는 기차와 트럭으로 바뀌어 동서를 잇고 있다.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에도 중국시장 개척을 꿈꾸는 한상(韓商)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패망한 고구려의 유민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당나라 장수로 서역정벌에 나선 후 약 1200여년 만이다.

베이징으로부터 3300 떨어진 이곳은 베이징보다는 유럽이 오히려 가깝다. 톈산(天山)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끼고 있어 중국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취급받는 곳이다. 타클라마칸이란 위구르어로 ‘죽음의 바다’라는 뜻이다.

이곳에 한상이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주)한화가 우루무치에 무기화학소재인 무수망초 공장을 세운 것이 처음이었다. 워낙 오지인 까닭에 지금도 이곳에서 활약하는 한상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 한상은 새로운 실크로드의 역사를 열고 있다. 우루무치에서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안문배(安文培) 대우종합기계 이사, 나동연(羅棟然) 한승무역 사장, 고광욱(高光郁) 한화염호 법인장 등이다.

안문배 이사는 대우종합기계가 신장병단 산하 기업과 합작해 1998년 설립한 신장대우기계 유한공사의 법인장으로 4년 만에 신장에서 대우 굴착기로 신화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신장 지역 굴착기 판매에서 대우는 지난해 일본의 히타치와 고마쓰를 제치고 미국의 캐터필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우루무치의 건설 현장에는 ‘대우’ 마크를 단 굴착기가 곳곳에 널려 있다. 무역협회의 권도하 부장은 “한국에서 무너진 대우가 중국에서 중장비 판매 신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지시장 개척에서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이사는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미·일 기업에 비하면 대우가 무슨 여력이 있겠느냐”며 “경쟁사가 한 시간을 뛸 경우 우리가 서너 시간 뛰면 고객이 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우 굴착기가 고장 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즉각 출동한다”며 “자본력을 앞세운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해 이기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략으로 한대 한대 늘어난 우루무치의 대우굴착기는 600대에 이른다.

올해 33세의 나동연 한승무역 사장은 불모의 시장을 개척한 젊은이다. 1999년 신장자치구 인접지역인 카자흐스탄에서 유학한 그는 2001년 7월 단돈 200만원을 들고 우루무치로 들어왔다. 그는 모진 시련을 겪은 끝에 1년 만인 2002년 1000대의 린나이 보일러를 팔며 신장자치구 최대의 보일러 판매상으로 떠올랐다.

최근 천연가스가 공급되기 시작한 우루무치는 겨울에는 섭씨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이다. 보일러가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기에 사업 전망이 밝지만 시장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 우루무치에 진출한 보일러 대리점은 한국 일본 유럽계를 포함해 30여 군데에 달한다. 이들 대리점은 대부분 중국인이 경영한다.

“중국인에 비해 관계가 낫겠습니까, 돈이 많습니까.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지만 문을 열심히 두드리니 열렸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우루무치 동쪽 80여 떨어진 곳에는 소금에서 돈을 캐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한화가 중국의 염호화공창과 합작으로 만든 한화염호의 무수망초 공장. 허허벌판 한가운데 소금호수(염호) 옆에 한화의 무수망초공장이 들어서 있다. 소금이 덩어리째 나오는 이 호수에는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한다. 무수망초란 합성세제나 유리가공, 염색에 사용되는 무기화학소재다. 한화는 이곳에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품질의 무수망초를 생산하고 있다. 고광욱 한화염호 법인장은 “최근 세계 최고 품질의 무수망초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며 “쓰촨(四川)의 무수망초와 세계시장을 놓고 새로운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루무치를 배경으로 한 한화의 무수망초는 쓰촨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비싸지만 질에서는 단연 우수하다.

‘불모의 땅’ 신장은 한국인에게는 낯선 곳이다. 신장지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은 이들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 한상은 “신장과 중앙아시아는 앞으로 떠오를 황금시장”이라며 “이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무수망초의 원료인 소금덩어리가 생산되는 우루무치 염호. 섭씨 영하 20도에도 얼지 않는 이 호수에서 나온 소금덩어리를 번호판도 달지 않은 트럭이 운반하고 있다. 멀리 톈산산맥 지맥이 보인다.

최대 무역중계지 ''우루무치''

中·중앙亞·한국상인 북적

서쪽의 베이징으로 불려

신장(新彊) 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烏魯木齊)는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21세기의 실크로드’의 최대 중계무역지다.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을 지닌 이 도시는 톈산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도 초원으로 뒤덮인 곳이다.

이 도시에는 한족 상인과 위구르족 상인은 물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의 상인이 모여들고 있다. 이들은 우루무치에 들어선 대규모 시장에서 물건을 사들여 신장과 중앙아시아 각지로 공급하고 있다.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 번영한 우루무치는 ‘서역의 국제도시’로 커가고 있다. 우루무치 사람들은 이 때문에 “중국 동부에 베이징이 있다면 서부에는 우루무치가 있다”고 말한다. 우루무치의 인구는 약 300만명에 이른다.

우루무치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한국산 물건은 40피트 컨테이너로 매월 15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우루무치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수출되는 한국상품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루무치 시장에서 한국에게 달갑지 않은 이상기류가 최근 흐르고 있다. 한국산 상품이 중국산에 밀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앙아시아로 흘러드는 중국산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저질·저가 상품으로 낙인찍혔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유럽과 일본 설비를 들여온 중국기업이 싼 가격, 빠른 납기, 개선된 품질을 앞세워 중앙아시아 시장 공략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넘어 중앙아시아 시장에서 벌어지는 한중 무역전쟁에 먹구름이 드리워질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높은 임금과 비싼 물류비용마저 치러야 할 판이니 한국 상품이 중국 상품과의 경쟁에서 이길 것을 기대하기란 애초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루무치에서 무역중계를 하는 나동연 한승무역 사장은 “우루무치를 찾는 중앙아시아 국가의 상인들 중 한국 물건보다는 중국 물건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걱정했다.

안문배 신장대우기계 법인장은 “특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차별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우루무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중앙아시아 시장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길은 기술개발을 통해 가격 경쟁력의 열세를 만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 강호원 특파원 20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