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화재청인지 국가발전위원회인지

문화재청은 “소중한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하고 있다. 이런 국민 상식으로 요즘 문화재청이 벌이고 있는 일들을 보면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문화재청은 엊그제 ‘선조(先祖)에게서 배우는 혁신 리더십’이란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1970~80년대 한국 정신문화연구원의 세미나에서나 봤음직한 제목이다. 그 시절 정신문화연구원은 유신이나 군사정부를 뒷받침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개발하는 것을 본업처럼 삼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부터 ‘혁신 리더십‘이 문화재청이 관리해야 할 ‘소중한 문화재’의 하나로 끼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문화재청은 이 행사를 열면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오늘날 정부 혁신을 위한 이념적 기반을 마련하고, 정부나 사회공동체 운영에 적용할 수 있도록 모델화해 이를 학습을 통해 내면화하여 실천함은 물론 각급 기관에 보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이란 간판을 내리고 ‘국가발전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달려는 모양이다.

문화재청이 학계 인사들에게 ‘혁신 리더십’ 연구를 의뢰한 것과 비슷한 시기인 작년 10월 유홍준(兪弘濬) 청장이 창덕궁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짚이는 대목이 없지는 않다. 유 청장은, 개혁(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소장학자(각종 위원회)를 중시하며,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조선시대 정조대왕과 닮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최근 광화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한글 현판을 정조의 한자 글씨로 바꾸기로 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과 유 청장의 ‘창덕궁 산책’을 떠올린다.

중국이 벌이고 있는 정체불명의 고구려·발해 유적 복원사업,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전국적 도굴 범죄 등 문화재청이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할 본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가 문화재청장으로 왔다 해서 문화재와 대중의 거리가 좁혀지나 했더니 문화재청과 권력의 거리만 좁혀지는 모양이다.

(조선일보 2005-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