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중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이 그렇게 하려 한다면, 존중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청(漢城·한성)을 ‘서우얼(首?·수이)’로 고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다. 현지 발음에 가깝다니 말이다.”

“우리의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선양(瀋陽)의 영어 표기는 중국어 발음과 비슷하게 해주지 않는가. 그렇다면 한청도 현지 발음과 가까운 서우얼로 표기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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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시가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한청에서 서우얼로 바꾼 데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긍정적 반응들이다. 역시 땅 큰 나라 사람들이라고 칭찬을 해주어야 하는 걸까.

그러나 칭찬을 해주기엔 아직 이르다. 꼬이고 뒤틀린 심사와 잘못된 중화중심주의를 원색적으로 토해 놓는 네티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긍정적 반응은 가뭄에 콩 나듯 섞여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우리의 중국어로 다른 나라 도시를 어떻게 부르건, 자기네들이 웬 간섭?”

“하하, 우스워 죽겠네.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계속 한청으로 부를 거야.”

“조상님들에게 부끄럽네. 조선반도는 원래 중화의 국토가 아니던가. 대만 사람들이 자기들은 중국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니, 이제 한국 사람들은 한청이라는 이름까지 바꾸네. 아무래도 (배후에 있는) 미국이 ‘세계 정권’을 수립할 모양이네.”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는 속 좁은 중국인들도 많다.

“고구려가 어쩌고 저쩌고, 단오절이 자기네 거라는 등 어쩌고 하더니, 한국, 이 쓰레기 같은 것들!”

“한국인들은 한청이라는 이름이 혼란을 가져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서우얼로 고쳐 우리 중국인들에게 줄 혼란은 어떻게 할 건데? 그건 더 큰 죄를 짓는 거 아닌가?”

“XXX, 정말 가소로운 것들!”

그러나 그래도 소중한 것은 한자(漢字)의 주인인 나라의 사람답게 서우얼의 ‘首’와 ‘?’이라는 글자의 뜻과 어원을 소상히 밝혀 놓은 학자급 네티즌도 있다는 점이다. 이 네티즌은 ‘首’는 ‘으뜸’이라는 뜻이며, ‘?’자는 한자의 근원을 밝혀 놓은 고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밝혀 놓았다. 다만 ‘왜 도시라는 뜻을 나타내는 도(都)나 성(城)자를 함께 쓰지 않았느냐’고 점잖게 따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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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의 그런 반응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데서 빚어지는 일이다. 대한민국 수도의 명칭이 자기네들이 불러온 것처럼 ‘한청’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漢城’을 ‘首’로 개명한 것이 아니라 원래 ‘서울’이던 것을 음가대로 부르도록 한 것뿐이다. 우리나라의 도시 이름은 모두 다 한자로 되어 있으나, 오직 단 하나 우리 수도의 명칭만은 한자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 ‘서울’이었다는 사실을 중국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의 한자 표기는 결코 ‘漢城’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서울의 한자 표기는 없었던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수천년 역사에서, 우리 수도의 한자 이름을 우리가 지어 중국인들에게 불러달라고 하는 것은 유사 이래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명칭에 관한 한 ‘중국으로부터 최초의 독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수도 명칭을 우리말 발음으로 불러달라는 데 대해, 13억 중국인들이여 이해심을 발휘하시라.

(조선일보 / 박승준· 중국 전문기자 2005-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