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수난

윤동주의 시 구절을 빌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하늘의 색’에 빗댄 것은 당대 최고의 한국미 감식안이었던 혜곡(兮谷)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면/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소년). 혜곡은 청자 비색(翡色)의 아름다움을 “비 개고 안개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드러나는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이라고 묘사했다.

▶ 고려청자의 지난날에는 그러나 아픔과 곡절이 더 많았다. 1906년 무렵 서울에서 골동상을 했던 다카하시란 일인(日人)의 기록이다. “어느 한국인 명사가 왔길래 앞에 있는 고려청자를 보였더니 ‘이건 대체 어느 나라 사기그릇이냐’고 진귀해했다. ‘개성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것’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심한 욕 중 하나가 “굴총(掘塚·무덤을 파냄)을 할 놈”이란 것이다. 남의 무덤을 파지 않으면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게 고려청자였으니 유교 가르침에 충실한 한국인들이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알 턱이 없었다.

▶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손아귀에 넣은 일제는 가난하고 무지한 조선 백성들을 앞세워 고려 왕도가 있던 개성과 강화 일대의 무수한 고분들을 파헤치고 다녔다. 최대 장물아비는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였다. “얼마든지 좋으니 고려자기만 나오면 가져와라. 몽땅 사겠다.” 통감이 이러니 전국은 도굴 천지가 됐다. 일왕(日王)과 귀족들에게 고려청자는 국권찬탈에 따르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 현재 국내에는 약 2만점의 고려자기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에는 3만~4만점이 있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도자기 컬렉션에 소장돼 있는 국보급 고려청자들이 사실은 불법 도굴된 장물들이다. 작년 서울서 열린 한 경매에서는 고려 상감청자 한 점이 10억9000만원에 낙찰,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원 소유주는 일본인이었다.

▶ 김동식 목사를 납치했던 북한 공작조에 대해 북한 당국이 상금으로 현금 대신 고려청자를 준 것으로 밝혀졌다. 몇 년 전 북한에 식량위기가 왔다고 했을 때 북한 출토 고려청자가 중국을 통해 대량 국내 유입된 적이 있다. 군부대가 중장비를 동원해 개성 일대 고분을 ‘굴총’한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심지어 평양의 박물관에 버젓이 소장된 고구려 벽화 조각도 흘러나오곤 했다.

나라가 먹고살 게 없고 망할 지경이 되면 가장 먼저 남의 손을 타는 게 문화재다.

(조선일보 / 김태익 논설위원 2005-1-19)